기사승인 : 2018-02-13 20:47 기자 : 일송재단 국제농업개발원
"형, 자신이 전부 떠안으려고 하면 안돼!"
- 간호생활 패전기 "무관심"과 "자립"으로 빠져드는 간호라는 수렁 -
2015년 4월, 서서히 어머니의 알츠하이머 증상은 악화되어 어머니는 과도한 스트레스로 환각까지 일어나는 상태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실행되고 있는 "공적 개호(간병)보험제도"를 이용하는 것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야말로 세상물정을 몰랐다고 할 수 밖에 없지만 나는 간호보험에 노인에 대한 "공적인"지원 제도가 존재한다는 것을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
이 원고를 쓰려고 지난 메일을 검색했더니 2014년 11월의 시점에서 여동생이 간호 인정을 받아야 할 필요성에 대해 나에게 언급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나는 "나 자신이 어머니를 돌볼 수밖에 없다"고 완고하게 믿고 있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공적 간호제도의 존재는 의식하고 있었지만 어머니와 내가 이용할 수 있는 제도라고는 요만큼도 생각치 않았던 것이다.
"이런 바보 같은" "이런 사람이 쓰는 글을 믿어도 될까"라고 할 것 같아서 배경을 조금 설명한다.
내가 가진 노인에 대한 간호지식은 1991년에 어머니의 아버지, 즉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무렵에 멈춰있다. 할아버지는 19세기 말인 1896년생으로 1991년에 9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는데 그 5년 정도 전부터는 지금 생각해보면 치매 증상이 나타나 간호를 했던 어머니가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것을 옆에서 지켜본 기억이 있었기 때문에 "나 자신도 어머니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똑같이 간호해야 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전 해군 군인, 그것도 군사학교 출신의 사관이었던 할아버지는 상당한 연금이 나오고 있었다. 그 연금을 이용해 우선 딸의 집 근처의 유료 양로원에서 지내다가 스스로 몸을 돌볼 수 없게 되자 간호 도우미를 고용했고, 그래도 간호가 어렵게 되자 양호 노인 홈으로 옮겼다. 할아버지의 생명은 최종적으로 꼼짝할 수 없게 된 노인들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병원에서 끝났는데 1991년 당시는 가정에서 도저히 어떻게 할 수없는 노인분들의 최후를 병원이 담당하고 있었다.
부모에 대한 간병은 소위 "자식의 책임"으로 인식한다. 그런 인상이 강렬했기 때문에 나는 노인 인구의 증가에 따라 공적인 개호 제도가 크게 변화했다는 것을 전혀 의식이 하지 못했다. 그 제도에 따라 간호보험이 시작된 것이 무려 지금으로부터 18년 전인 2000년. 너무나 무지한 일이었지만 사실, 평소에 노인 간호에 대해 무관심했던 것이 문제였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간호 패전의 첫 번째 요소다.
"성인은 부모를 직접 보살펴 드려야만 도리를 다하는 것인가?
변명을 또 하나 한다면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측의 탓도 있다. 간호 스트레스는 점차적으로 커져간다. "이 정도면 괜찮아" "아직 괜찮아"라고 생각하는 사이에 스트레스는 서서히 증가해 깨닫고 보면 냉정하게 주위의 상황을 둘러보고 지원을 요청할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정신 상태에 내몰려 있게 되는 것이다.
자식인 내가 해야 한다는 책임 의식, 노인 간호에 대한 무관심에서 오는 아집 그리고 천으로 목을 조르는 것 같은 스트레스가 간호 당사자의 시야를 좁혀 버린다. 간편히 이용할 수 있는 간호제도를 놓치고 나와 비슷한 상황에 떨어질 가능성이 있는 분들이 지금도 적지 않게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어른이 되면 자립하는 존재라고 배우고 그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성장한다. 그리고 노인은 "성인"의 범주에 들어간다. 경로 정신과는 별개로 우리는 "성인은 자립하는 존재"라고 배우고 생각하게 되었으니 노인도 자립하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자립할 수 없게 된 노인은 그 가족이 돌본다. 노인을 돌보는 것까지가 성인으로서의 자립이다.
요즈음의 생활보호 부정수급에 대한 비난을 살펴보면 우리는 평균적으로 의외일 정도로 자립을 존중하는 결벽의식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인식을 가진 상황에서 "공적 간호제도에 의지하라"는 발상은 무의식적으로 자립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인식되어 기피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체험을 해보고 처음 알게 된 사실이긴 하지만 치매에 걸린 노인에 대한 간호는 자신이 노력 만하면 어떻게든 되는 것이 전혀 아니었다. 간호를 끝까지 해내려면 "공적 간호제도를 어떻게 하면 제대로 이용할 수 있을 것인가"하는 전략을 가지는 것이 첫번째 필수였다. 노인의 간호는 본질적으로 가정 내에 속하는 것이다. "아니 기본적으로 가정이 간호해야한다"라는 의견을 가지고 있다면 정말 치매 간호의 현실을 제대로 모르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간호보험을 이용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는 권리
간호보험의 이용은 권리다. 자신 혼자 어떻게든 하려고 하지 않고 자신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적극적으로 의지하고 이용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쓰러져버려 간호 그 자체가 성립하지 않게 된다. 최악의 경우 간호 살인이 일어나거나 동반자살이라는 결과에 이르는 경우조차 있다.
살인이나 자살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가끔 보도되는 간호학대는 간호하는 측에게 가해져오는 극도의 스트레스가 원인이다. 간호 보험은 간호하는 가족의 스트레스도 줄일 수 있다. 자신이 학대하는 측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공적인 제도의 이용은 필수적인 것이다.
그것은 결코 그것은 "편안함을 찾는다"거나 "제도에 무임승차한다"는 것이 아니다. 반복이 되지만 간호는 본질적으로 가족과 공적제도가 연계되지 않으면 완수 할 수없는 사업인 것이다.
물론 간호 사업자가 사업으로서 과도한 서비스를 파는 경우도 있을지 모른다. 가족이나 업자가 좋다고 생각하는 지원이 간호 받는 측에게도 정말로 좋은 것인지 하는 문제도 있다. 국가의 재정에 간호비용이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을 어떻게 할까하는 의견을 가진 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먼저 간호하는 측이 스트레스로 쓰러져 죽어버리면 국가 GDP에 대한 공헌도 아무 것도 아니게 된다. 개별적인 논의는 제쳐두고 간호하는 측이 권리를 행사하는 것을 누구도 손가락질을 해야 할 까닭은 없다.
지난 회에 쓴 2015년 4월 9일, 넘어지시는 바람에 어머니는 신약 임상시험의 참여 기회를 놓쳐버렸다. 하지만 이 사건에 의해 단번에 공적 간호의 도입이 진행되었으므로 인생의 길흉화복은 새옹지마"라는 것이 되었는데 그 열쇠가 되어준 것은 동생이었다. 어머니가 넘어진 사건을 계기로 동생은 "형, 모든 것을 자신이 떠안아서는 안된다"며 맹렬히 내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왜 이런 것을 알지 못했어"라고 투덜거리면서도 지나친 스트레스에 떠밀려 있던 나를 대신해 공적 간호를 받기 위한 수속을 준비해 준 것이다.
간호, 고민하기 전에 우선 지역 포괄 지원 센터에
현재 간호 보험 제도는 65세 이상 노인 또는 40~64세의 노화가 원인이 되는 특정 질병(골다공증이나 치매 등 16 종류)의 환자가 이용할 수 있게 되어있다.
5월 중순에 인증이 나왔다. 어머니는 "요개호1"이라는 인증을 받았다
말은 비슷하지만 "요지원(要支援)"과 "요개호(要介護)"는 담당하는 조직이 다르다. 요지원은 지역 포괄지원 센터가 서비스의 지원을 맡는다. 요개호가 되면 각 시구동과 계약하는 주택 개호 지원 사업자에 소속된 "케어 매니저"라는 직종의 사람들이 담당자가 되어 본인의 상태와 사용할 수 있는 점수를 감안해 개호계획을 작성해 간호 서비스를 이용하게 된다.
케어 매니저는 가정의 내부에 상당히 관계하면서 서비스 설계를 한다. 당연히 인간적인 갈등도 있으므로 교체를 요구하는 것도 가능하다.
지역 포괄지원 센터의 추천을 받아 어머니의 담당 케어 매니저가 된 것은 T 씨라는 30대 남성이었다. 다행히도 T씨와 나는 매우 긴밀한 협력 관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 그 후, 일이 있을 때마다 나는 T 씨에게 신세를 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전에 또 한가지 일 "어머니가 간호 서비스를 받는 것에 익숙해지는" 관문이 기다리고 있던 것이었다.
<출처 : 2017年4月13日松浦 晋也(마츠우라 신야) / 번역: 오마니나>
일송재단 국제농업개발원 webmaster@iadi.or.kr
<저작권자 © 일송재단 국제농업개발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