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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의 활동무대 중국대륙일수도 있다!

기사승인 : 2017-12-05 20:34 기자 : 일송재단 국제농업개발원

1998년 12월 주간동아에서 당시 38세의 서울대 천문학과 박창범교수는 처음으로 「삼국사기」에 기록된 천문현상을 검증한 결과 삼국의 활동무대가 한반도가 아니라 중국대륙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밝혔다. 그의 이런 발표는 식민지사관에 젖어있던 역사학계의 무서운 질타를 받았다.
이같은 결과가 애초의 연구목적은 아니었다. 박교수는 「삼국사기」의 천문기록이 중국의 기록을 베꼈거나 꾸며낸 것이라는 일본 천문학자들의 주장에 의문을 품었다. 박교수는 이를 검증하기 위해 삼국시대의 천문상태를 재현한 프로그램을 짜고 이를 대학의 중앙컴퓨터에 연결해 가동시켰다. 시간이 흘러 방대한 관측결과가 나타나자 금성이 낮에 보이는 현상과 달이 행성을 가리는 현상, 일식현상 등에 대한 「삼국사기」의 기록들이 정확하게 컴퓨터의 계산과 일치했으며, 이들은 중국의 문헌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기록이었다. 삼국이 중국에 의존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천문현상을 관측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그런데 실험결과 더욱 놀라운 사실이 발견됐다. 삼국에서 주기적으로 관측한 일식기록을 분석한 결과 삼국의 최적 관측지점이 한반도를 벗어나 중국 동부지역에 걸쳐 있었던 것이다. 초기 신라의 경우 중국의 양쯔강 유역, 백제는 발해만 유역, 고구려는 백제보다 더 북방에 최적 관측지가 자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같은 결과에 대해 초기에 박교수는 매우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이를 근거로 삼국의 무대가 중국이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는 『내 역할은 과학적인 실험결과를 제시하는 데 까지고, 삼국의 관측지점이 왜 중국 동부에 있었는지 밝혀내는 것은 역사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몫』이라고 말했다. 아직 역사학계에서조차 제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을 그것도 다른 분야인 천체물리학자가 제기한 「돌출적」 이론이 일반인에게 직접 소개되면 불필요한 오해와 반발을 야기할 수 있다고도 우려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삼국사기」의 내용 가운데 40% 정도는 자연현상과 관련된 기록인데도 많은 학자들이 이를 외면하고 나머지 60%의 기록만으로 역사를 해석하는 것이 아쉽다』며 그 「40%」의 가치와 효용성을 강조했었다.


자연현상 기록을 이용한 삼국의 위치 고증 연구  
고려시대에 집필된 김부식의 三國史記와 일연의 三國遺史에는 삼국시대에 일어난 일식이 67회, 행성운동의 이상현상이 40회, 혜성의 출현이 63회, 유성과 운석의 낙하가 42회, 기타 14회 등 총 226회의 많은 천체현상들이 기록되어 있다.
중국과 일본의 고대 사서에도 나타나는 이러한 천문현상 기록들은 각국 고대 과학의 수준과 역사를 가늠하는 척도로서 인식되기도 한다. 천문현상에 대한 우리의 고대 기록들은 그동안 국내외 학자들에 의하여 연구되어 왔다. 그런데 이 천문현상 기록들은 순수과학과 과학사적인 가치뿐만 아니라, 고대 역사학에도 그 응용 가치가 있다.
그 이유는 천체에 대한 기록을 당시 주변 국가들의 기록과 비교함으로써 과학 문물의 흐름을 알 수 있고, 또한 특정 국가가 남긴 천체 관측 기록을 분석하여 정세변화, 강역의 위치 등을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천문현상 기록뿐만 아니라, 지진, 홍수, 태풍 등의 기상학적, 지질학적 기록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자연현상 기록은 다양한 가치를 갖는다. 이 기록들을 이용하여 본문에서 논의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나라 고대 삼국의 위치를 추적하는 것이다.
천체 관측 기록으로부터 관측을 수행한 나라의 위치를 알아볼 수 있다는 생각은 일식과 같은 현상의 경우 달 그림자가 지구상의 모든 곳에 드리워지지 않기 때문에, 일부 지역에서만 식의 진행을 볼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또한 여러 해 동안 한 장소에서 일어난 일식들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위치가 관측자의 위치, 곧 그 국가의 위치가 되리라는 것이다.
본 연구에서는 일식을 이용한 삼국의 위치 고증에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하였다.
첫째는 특정 국가가 기록한 일식들에 대응하는 천체역학적으로 계산한 실제 일식들의 진행상황을 동아시아 전역에서 조사하여, 그 일식들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최적 관측지를 찾는 방법이다.
다음 쪽에 나오는 세 도표의 평균 식분도는 신라(24회)와 백제(19 회)와 고구려(8회)에서 기록한 일식 중 동아시아에서 관측할 수 있는 일식들의 평균식분을 보여준다. 윤곽선 안쪽 지역으로 갈수록 평균식분이 크며, 이것은 곧 그 기록을 남긴 국가의 위치를 암시한다고 할 수 있다. 흥미롭게도 삼국의 일식을 가장 잘 관측할 수 있는 곳이, 세 경우 모두 한반도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일식 기록 횟수가 적은 고구려의 경우에는 최적 관측지가 확실하게 나타나지는 않지만, 대체로 백제나 신라의 경우보다 북쪽에 치우쳐 있음을 알 수 있다. 최적 관측지가 확실히 보이는 백제와 신라의 경우에는 각국의 관측자가 발해만과 양자강 유역에 각각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삼국의 위치를 찾기 위한 두 번째 방법으로는 앞의 방법과 정반대로 개개의 일식을 볼 수 없는 지역을 제거해 나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특정 국가가 기록한 일식을 모두 볼 수 있는 지역을 바로 그 국가의 위치로 생각하는 것이다. 다음 쪽의 세 도표에서 잔 점들을 찍은 곳이 바로 이런 지역이고, 바깥으로 나갈수록 1개, 2개 또는 그 이상의 일식들은 기록이 되어있음에도 볼 수 없는 지역이다.
분명한 결론을 내릴 수 있는 백제와 신라의 경우 기록된 일식을 많이 볼 수 있는 지역이 앞에서 보인 최적 관측지와 일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신라의 경우 관측자가 경주에 있다면, 동아시아에서 관측 가능한 24개 일식 중2개를 전혀 볼 수 없다.
백제와 신라가 현재 중국의 동쪽 지방에 있었다는 생각은 최근 일부 재야 사학가들에게서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본 연구의 결과는 그들의 주장과 상당히 일치한다고 할 수 있다. 천체 관측만을 이용한 본 연구 내용에서만 생각하면, 왜 기존 역사관과 달리 백제와 신라의 위치가 중국대륙에 있다는 결과가 나왔는가에 대하여 두 가지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다.
첫째는 삼국사기에 실린 일식 기록이 중국의 기록을 차용한 것일 가능성이다. 삼국의 천체관측 기록은 일제 식민지 시대부터 일본학자들에 의해서 꾸준히 연구되어왔다. 천체역학적 계산과 사료 비교를 통해 그들은 적어도 5세기까지의 삼국사기 천문현상 기록들은 중국기록을 그대로 베낀 것이라고 결론짓고 있다. 1910년대에서 현재까지의 이러한 연구 결과는 국내외적으로 상당한 인정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국내에서 출판되고 있는 과학사 서적들에도 이런 주장이 긍정적으로 언급되고 있으며, 구미에서는 사실로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일본학자들의 주장에는 논리적 타당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제는 같은 문제에 대한 국내 학자들의 연구가 필요한 시점에 와 있다고 할 수 있다.
둘째는 백제와 신라가 실제로 중국대륙 동부에 있었을 가능성이다. 따라서 일식기록도 삼국의 독자적인 천체 관측 기록들일 가능성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본 연구의 결과는 삼국의 위치가 분명 중국대륙에 있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 알려져 있는 우리나라의 고대 역사는 심하게 왜곡된 것이고, 바로 잡혀야만 하는 것이다. 우리의 역사를 진실에서 벗어나 이민족이 보고 싶은 대로 왜곡시켜 후손에게 전해서는 더욱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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