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승인 : 2017-04-27 20:03 기자 : 일송재단 국제농업개발원
세상에 그런 고기가 있을 줄이야. 산골에서 태어나 분지에서 줄곧 자라 비린 것들을 아주 많이 먹어 본 것은 아니지만, 광어, 우럭, 아나고 등등 횟집 수족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은 솔찮이 먹어보았음에도 세상에 그런 고기가 있을 줄은 몰랐다. 물론 누구나 평생 살면서 너르고 너른 바다 온갖 어류들 중 고작 0.0001퍼센트 정도밖에 알지 못할 것이고, 그 중에서도 겨우 0.1퍼센트 정도밖에 먹어 보지 못할 것이다. 아는 물고기보다 모르는 물고기가 더 많은 게 당연하고, 먹어 본 물고기보다 먹어 보지 못한 물고기가 더 많은 게 당연하다.
그러나 지금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어떤 ‘맛’에 관한 것이다. 아니, 어떤 맛에 대한 ‘상상력’에 관한 것이다. 생선의 맛, 그 중에서도 날것으로 먹는 회의 맛에 대해 사람의 머리가 기억하고 기대하는 것은 어느 만큼일까? 대체로 먹거리가 다 그렇듯이, 회 역시 저마다의 경험이 쳐놓은 가두리 안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고기는 달랐다. 우리 머리의 가두리를 훌쩍 뛰어넘어 돌고래처럼 수면 위로 비상하는, 꼼치처럼 캄캄한 심해를 자유롭게 유영하는 그런 맛이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것도 아닌, 상상을 배신하는 맛, 그 외에 달리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긴꼬리벵에돔. 그날 마라도 작은 횟집, 바람 매섭던 겨울날, 사방이 어둠뿐인 그곳에서 사내가 내어놓은 고기의 이름은 그랬다. 우리 세 여자의 머리를 강타한, 껍질 검은 그 고기는 이름마저 상상 밖이었다. 돔 중의 돔이라 불리는 벵에돔, 그 중에서도 제왕이라 불러야 마땅한 긴꼬리벵에돔이라 했다. 세 여자는 연신 감탄을 금치 못한 채 젓가락을 놀리며 고기가 술을 마시는지, 내가 술을 마시는지 알 길이 없는 밤을 보냈던 것이다.
그 이후로 사내가 잡아주는 다른 많은 고기를 먹어보았지만, 내게는 회 맛에 대한 기준이 긴꼬리벵에돔으로 못 박혀 버렸다. 그 어떤 고기도 긴꼬리벵에돔의 자리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내 혀끝에서 살아나는 긴꼬리벵에돔 맛의 기억, 그러나 감히 언어로는 표현할 수가 없다. 다만 마라도와 제주도 사이에 수심 200미터 깊이의 바다가 가로 놓여 있다는 것, 그곳이 한반도 바다 중 진도 앞바다 다음으로 물살이 세다는 것, 그 형언할 수 없는 맛 속에는 마라도 앞바다의 그토록 거친 물살의 무늬가 고스란히 아로새겨져 있다는 것만은 말할 수 있으리라.
사내는 긴꼬리벵에돔 때문에 마라도에 발을 디뎠다고 했다. 부산에서 태어난 사내는 열 몇 살 때부터 아버지 손에 이끌려 낚시를 배우다 대한민국의 웬만한 섬이란 섬은 다 돌아다녔으며, 무인도에 들어가 보름씩 틀어박혀 낚시를 하기도 했단다. 마라도는 바다낚시의 종착지다. 많은 낚시꾼들이 긴꼬리벵에돔을 잡기 위해 마라도를 수도 없이 들락거린다. 그 손맛을 한번 맛본 낚시꾼이라면 누구나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한다. 다른 고기들은 시시해지는 것이다. 사내도 그렇게 마라도와 인연을 맺었다. 섬을 들락거린 지 오륙 년 째 되던 즈음, 국가 부도 사태가 터졌다. 당시, 친구와 함께 자동화설비를 만드는 공장을 운영하던 사내 역시 부도를 맞았다. 그렇게 사내는 섬으로 숨어들었다. 내가 나라 밖에서 숨 쉬고 싶었듯이 사내도 살기 위해 섬으로 도망을 쳤던 것이었다. 나라의 잘못으로 나라에 떠밀려 벼랑을 닮은 곳으로.
나는 마라도 그 이전도, 그 이후도 혼자 여행을 떠나본 적이 없다. 혼자 영화를 본 적도 없고, 혼자 식당에 들어가 밥을 먹은 것도 삼십 대 중반에 들어서 터미널이나 기차역 식당에서가 전부다. 외롭게 자란 탓이다. 부모는 있으나 할머니 손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아버지가 있으나 홀부모 밑에서 자랐고, 형제는 많으나 옥신각신 부대끼고 자란 형제가 없는 탓이다. 늘 혼자여서, 혼자 어디론가 떠난다는 것이 겁이 났던 것이다. 그런 내게 마라도행은 의외의 사건이었다. 그 섬은 오히려 혼자여야 어울리는 곳이었다. 혼자 망망대해 바다를 보고, 혼자 숱한 바람을 맞고, 혼자 떠다니듯 거닐어야 제격인 곳이었다. 그런 사건과도 같은 여행의 끝자락에서 만난 사내, 사내가 잡아 먹여준 긴꼬리벵에돔, 그것이야말로 진짜 사건이었던 것이다.
어쩌면 나는 마라도에서의 생활을 즐긴 것이 아니라 견딘 것이었는지 모른다. 스스로 유폐하고자 했으나, 스스로 칩거하고자 했으나 결코 외로움을 이긴 것은 아닌지 모른다. 그리고 여행을 끝내고 돌아갔을 때 여전히 그대로인 삶이 두려운 것은 아니었는지. 그래서 그 밤의 긴꼬리벵에돔 맛이, 한라산 맛이 그리도 달달했던 것일 게다. 사내의 환대가 참으로 고마웠던 것일 게다. 섬 사내들의 예의 그 까무잡잡한 낯빛이 아니라 하얀 낯빛을 가진 사내여서 더 친근했던 것도 같다. 거기에 주방에서 안주를 만드는 사내의 뒤태를 보고 성란 언니가 던진 한 마디가 썩 마음에 들었던 것도 같다. “저 나이에 저런 몸매를 유지한다는 건 자기 관리가 철저하다는 거지.” 물론, 그게 그저 체질이라는 걸 알게 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사내는 마라도에서 낚시 사부로 통했다. 갯바위 낚시는 포인트가 관건이다. 마라도에서 십오 년 가까이 낚시를 해오던 사내에게 마라도의 포인트는 눈 감고 짚어도 훤했으니, 육지나 제주에서 들어오는 낚시꾼들에게 사부로 불리고도 남았다. 거기에 삼십 년 넘는 낚시 경력으로 고기 낚는 뛰어난 기술까지 겸비했으니, 지금도 자신보다 나이가 열 살 이상 많은 사람들에게도 이름 대신 ‘사부’라는 호칭으로 통한다. 그는 하고 많은 사람들이 도대체 당신네들이 어떻게 결혼까지 하게 되었냐고 묻고 물어오는 과정을 수없이 겪더니, 워낙 낚시 실력이 좋아 긴꼬리벵에돔이라는 최고급 미끼로 나를 낚아 결혼을 하게 되었노라고, 최종 정리하기에 이르렀다. 나는 내가 낚였다는 피동형이 맘에 들지 않아 손사래를 쳐왔지만, 그의 말이 그리 틀린 말은 아니긴 하다. 만약 그날 회 접시에 담긴 것이 광어나 우럭쯤이었다면 그를 거들떠나 봤을까 싶다. 참, 그가 낚시 실력 못지않게 회도 뜰 줄 아는 귀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도 중요한 사실 중의 하나다. 수많은 낚시꾼들이 잡을 줄만 알았지 회 뜰 줄을 몰라 식구도 못 먹이는 사태가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가 말이다.
그날 이후, 이틀인가 뒤에 낮에 횟집 앞을 지나면서 친한 척 인사 나눈 것이 두 번째 만남이었고, 또 이틀인가 뒤에 소설 쓰는 나미 언니가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라고 송별식 한답시고 또 사내의 횟집으로 몰려가 그 맛난 긴꼬리벵에돔 앞에 두고 부어라 마셔라 했던 것이 세 번째 만남이었다. 그리고 그 세 번째 얼굴 보는 자리에서 사내는 내게 청혼을 했던 것이었다. 아직도 그 억양, 그 말투가 생생하다. “나랑 결혼 안 할랍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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