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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 추억의 야화(野話)

기사승인 : 2017-04-27 20:01 기자 : 일송재단 국제농업개발원

<제2화>  꽃도 먹을 수 있어야 한다

1972년 5월 첫째 주 토요일 대통령께서 직접 설계하신 새마을 1호 주택(본채와 사랑채, 창고동 3동)이 완공되었다는 보고를 받으시고 농장에 오셨다.
청와대 시범농장 內 대통령께서 기거하실 주택을 짓는다는 소문을 듣고 제일 먼저 방문하신 분은 박종규 경호실장이였는데 실장께서는 경호업무에 필요한 안전요원 배치와 저격용 총포위치 등 무시무시한 내용을 설명하면서 주변에 장해요소가 되는 나무들을 제거하라고 지시하였다.

아울러 대통령 내외분이 좋아하는 나무로는 적단풍(흔히 노무라 단풍이라고 칭함)과 목단이고 국화꽃도 좋아하신다면서 이것들을 심으라고도 했다. 본체 왼쪽에는 잔디밭 10평, 정면에는 20평 정도에 국화꽃과 몇 가지 1년생 꽃을 심었다. 며칠 후는 윤필용 수경사령관이 시흥 소하리 수경사 직영 농장에서 가져왔다면서 몇 종류의 정원수를 주었다.

또 정주영 회장, 동아건설 최원석 회장도 소문을 어디에서 들었는지 당신들도 인근에 농장을 만들테니 도와달라고 왔다. 훗날 최원석 회장은 기흥단지 내에 5천 평 규모의 농장을 만들었고, 농장장에 고형 후배를 추천했고, 정주영 회장은 경부고속도로 신갈TG 인근의 공군 탄약고 오른쪽 야산에 1만 5천평 규모의 왜성 사과농장을 만들면서 별장을 지었다. 이곳 역시 농장장으로 서울 농대를 나온 고향선배를 소개했다.

어느 날은 선경그룹 창업자이신 최종건 회장도 오셨다. 이 분은 내가 모시던 박진환 경제특보(새마을담당)와는 미국 유학시절 친구라고 했는데, 신갈 호수 옆에 육영수 여사님을 위한 영빈관을 짓는다고 시작했으나 공사기간이 2년이나 걸렸고 준공직전인 74년 8월 15일 북한 간첩인 재일동포 문세광에 의한 영부인의 서거로 중단되었다.

그날 대통령께서 완공된 주택을 한 바퀴 둘러보시고 부엌과 연탄아궁이 등도 일일이 체크하면서 고향에서 임자 부인이 이사해오면, 불편한 사항을 파악하여 알려달라는 말씀도 하셨다.
드디어 응접실에 앉으시면서 응접세트는 어디에서 가져왔느냐는 질문에 파고다 가구사장인 김문기(상지대학 설립자)가 3세트 만들어 청와대에 2세트, 여기에 1세트 가져왔다고 답변했다. 최근 이것을 인사동 골동품 수집상이 무려 3억 원을 주겠다고 찾아오기도 했다.

이어서 대통령께서는 최근에 시판된 은하수 담배를 한 개비 입에 물면서 “임자, 저기 심은 건 무엇인가?”, “예, 각하 저것은 봄에 꽃이 피는 춘국입니다.”, “먹을 수 있어?”, “아닙니다. 먹지 못합니다. 각하”, “이 사람아 앞산에 진달래꽃이 지천으로 피어 있고 주변 전체가 자연이고 꽃밭인데 왜 먹지 못하는 것을 심는가?”, “예, 알겠습니다. 당장 시정하겠습니다.”

대통령께서는 본체 앞에 정원 만드는 것을 싫어했고, 차라리 무나 배추 심는 것을 원하시는 것 같았다. 그날 담당 특보님과 경호관께서 춘국은 누가 가져왔느냐고 묻길래 경호실장이 청와대 온실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했더니 웃으면서 꽃도 피고 먹을 수 있는 것을 심으라고 하였다. 그 후 식용국화, 완두콩, 아티초크(식용 엉겅퀴) 등을 심었다.

며칠 후 담당 경호관은 “대통령께서는 청와대에 꽃 심는 것도 싫어하셨는데, 최근 ‘엔젤’이라는 카네이션이 일본으로 대량 수출된다는 보고 이후 화훼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농장에는 무조건 먹는 채소를 심으라고 하셨다면서 어린 시절 너무 가난하게 자랐기 때문에 농지에는 당연히 먹는 것을 심어야 된다는 고정관념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당시 가난한 사람들은 하루 두 끼 먹는 사람도 흔한 시절이라 통치자의 입장에서 정원에 꽃이 가당키나 했을까 하는 생각이다.

(재)국제농업개발원  webmaster@iadi.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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