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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미트리 돈스코이호를 찾아서

기사승인 : 2017-04-03 20:00 기자 : 일송재단 국제농업개발원

사진제공: 신동에너콤 / 드미트리 돈스코이호

1905년 러일전쟁 중 쓰시마 해전에서 러시아의 엄청난 전쟁 군자금을 싣고 울릉도 인근에 침몰한 전설의 돈스코이호. 지나간 역사의 자취가 아직 울릉도 저동 앞바다에 잠들어있다.

러일전쟁의 배경

러시아는 부동항을 차지하기 위해 일본은 한반도를 교두보로 아시아를 차지하려고 했다. 1894년 발발한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중국 랴오둥반도를 얻었지만 러시아, 독일, 프랑스 연합군에게 랴오둥반도의 뤼순과 다롄을 빼앗기자 러시아에게 만주 지배권을 넘겨주고 한반도를 차지하겠다고 제안하지만 러시아는 이를 거절했다.

이에 분개한 일본은 1904년 뤼순항과 제물포항에 정박 중이던 러시아 함대를 기습 공격하여 러일전쟁이 발발한다. 러시아의 발틱 함대는 1904년 10월 15일 리예파야항을 출항하여 긴 여정을 돌아서 1905년 5월 27일부터 양일간 일본함대와 전투를 가졌는데 전멸하고 만다.  
전함 8척을 비롯한 군함 34척과 공작선. 병원선을 포함하여 총 38척의 거대한 규모의 발틱함대는 일본 근해에 도달할 때까지 무려 29,000km 해상을 220일에 걸쳐 항해할 수밖에 없었기에 최악의 상태로 교전을 벌였기 때문이다.  

당시 출항하는 돈스코이호 모습

러시아의 패전과 한국의 일본 식민지배의 시작
러시아 국내에서는 혁명이 일어나 안팎으로 혼란한 틈에 연일 일본에 패하자 미국의 중재로 러시아와 일본이 포츠머스 조약을 맺으며 러일전쟁은 끝났다. 그 결과 러시아는 극동지역에서 물러나고 만주를 포함한 동아시아 주도 세력으로 일본이 등장하게 된다. 러일전쟁이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가 되는 발판이 된 셈이다.

보물선으로 되돌아온 돈스코이호

1980년 즈음까지 울릉도 주민으로 당시 상황을 목격했던 사람이 생존해 있었다. 목격자들에 의하면 침몰 당시 울릉도에 상륙했던 러시아 해군들이 손짓 발짓으로 자신들이 타고 왔던 배에 금괴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고 한다. 다이버인 곽경배 씨가 1981년 해양연구소에 의뢰 1차 조사 작업을 하고 1982년의 수색작업에는 2백m급 일본 유인잠수정까지 동원됐으나 열악한 조사 장비와 경비 부족으로 지속적인 탐사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러던 중 2000년 12월 20일 울릉도 앞바다에서 돈스코이호를 발견한 것은 국책연구기관인 한국해양연구소로 이때 탐사에 소요된 비용 70억원을 동아건설이 지원했다. 그러나 이 보물선이 발견되자마자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는데 러시아와 일본이 그 소유권을 각각 주장하였고 게다가 보물선을 둘러싼 투기자본의 머니게임까지 가세하면서 보물선의 발견은 복잡한 국제문제로 비화해갔다.

돈스코이호의 발견

2003년 탐사팀은 러-일 전쟁 해전 기록을 토대로 울릉도 앞바다 가로 8km, 세로 10km 해역을 샅샅이 뒤져서 2016년 드디어 돈스코이호로 추정되는 선체를 발견했는데 발견된 곳은 울릉도 저동항에서 2km 떨어진 수심 400m 해저 계곡에 걸려있었다.  유해수?해양학자는 “침몰선의 선미와 발코니, 152mm대포가 돈스코이호와 같고 이 해역에서 다른 군함이 침몰한 기록이 전혀 없어 돈스코이호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16년 동안 고군분투하며 돈스코이호를 찾고 인양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고 있는 유해수 소장은 그가 여기에 온 힘을 다해 열정을 쏟아내는 것은 해양학자로서의 사명감과 책임감 때문이라고 밝혔는데 100년이 지난 이 보물선을 우리나라 과학기술력으로 꼭 인양해서 본모습을 드러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돈스코이호를 중심으로 본 러시아와 한국, 일본의 역사

돈스코이호는 대한제국과 러시아간의 우호를 상징하는 함선으로, 청나라와 일본으로부터 조선이 받는 내정간섭을 견제하는 역할을 맡아왔다. 돈스코이호의 함장은 고종을 알현하기도 하고, 아관파천 때는 한국군 양성과 병기 생산도 도왔다. 고종이 경운궁으로 환궁할 때 돈스코이호의 병력이 호위에 힘을 보태기도 했다..일본군의 선전포고 없이 발발한 러일전쟁에서 돈스코이호는 태평양 제2함대로 출전하였지만
오랜 항해로 인해 일본에게 패했지만 일본군의 항복권유에 응하지 않고 끝까지 항전하다 결국 자침하게 된다. 이 해전으로 러시아가 항복한 것이 아니라는 증명이 되어 전쟁 배상금을 물지 않게 되었고, 끝까지 항복하지 않고 싸우다 자진 침몰한 영웅적 정신은 아직도 러시아에서 높이 평가되고 있다.

한ㆍ러 간의 공동문화콘텐츠 사업으로 역사를 재조명하자

김윤식 신동에너콤 회장은 2016년 9월 러시아 동방포럼에서 돈스코이호를 인양하여 울릉도에 복원, 전시하고 러시아 병사들의 추모공원을 조성해 임전무퇴의 정신을 기리고자 갈루시카 극동개발부장관에게 제의하였다. 돈스코이호와 함께 가라앉은 당시의 금화의 가치가 워낙 커서 러시아, 영국, 홍콩 등지에서 투자희망자가 많았는데, 김 회장은 “돈스코이호 인양과 복원사업은 한국과 러시아 간의 공동문화콘텐츠 개발 사업에 적합한 사업”이라며 적극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

(재)국제농업개발원  webmaster@iadi.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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