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승인 : 2017-03-03 19:52 기자 : 일송재단 국제농업개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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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담(漫談)을 아시나요? 재미있는 이야기로 세상을 비판, 풍자하는 만담은 옛 궁중연극 소학지희(笑謔之戱)와 민간의 재담(才談)이 합해진 ‘이야기 문화’ 예술장르입니다. 고된 삶 속에서 서민들을 웃고 울리며 우리와 함께해온 자연발생적 예술분야입니다.
“아들아, 이제 가야겠다. 근데 넌 내가 왜 죽는지 아느냐?”
“아니 아버지. 어찌 그런 말씀을요. 어서 회복하셔야지요!”
“아니다. 난 심심해서 죽는다” . “너도 늙어봐. 할 일도 없고 진짜 심심해 죽겠다.”
만담가 故장소팔 선생이 죽는 순간까지 만담가의 면모를 보여준 일화이다. 이제는 한 시대를 풍자했던 장소팔 선생의 뒤를 이어 차남인 장광팔씨가 재담과 만담의 계승,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일노일노 일소일소(一怒一老一笑一少)라고 했던 가. 인터뷰를 통해 만난 장광팔 선생은 환히 웃는 얼굴로 나이가 믿어지지 않는 젊음을 유지하고 있었다. 만담보존회 5대 회장이자 아버님의 대를 이어 만담가로 제2의 인생을 펼치고 있는 장광팔 선생을 만나보자.
코미디의 뿌리는 재담과 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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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담의 뿌리는 재담이다. 만담이 희극단계를 거치면서 요즘의 코미디와 개그까지 발전하게 된 것이다. 뿌리는 같아도 사회 변천에 따라서 모습을 달리한 것이다. 작고하신 아버지께서는 만담은 ’재담의 아들’, ‘개그의 아버지’라고 하셨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만담 속에서 자란 장선생은 아버지는 타고난 만담가였다고 기억한다. “아버지가 왕신보통학교 학예발표회에서 연극 손오공의 손오공 역할을 했는데 이 때 스카우트 되어 연극무대에 서셨다. 18세때 박춘재 선생의 ‘한양좌‘라는 공연단체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만담을 시작하셨다.”고 전한다.
“그 당시 아버지의 인기는 속된 말로 하늘을 찔러 지금의 유재석과 강호동의 인기를 합한 것보다 더한 열풍이였다.” 어린 아들의 눈에는 아버지가 동경의 대상이자 롤모델이었으니, 아버지가 쓴 만담대본을 파트너인 고춘자 선생에게 전달하는 것은 그의 몫이었고, 두 분이 만담 연습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만담과 가까워졌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만담가인 아버지의 뒤를 잇는 것이 자랑스러운 일이 아닌 시대였고, 점차 컬러TV이 보급되어 시작적인 영상에 사람들이 더 열광하면서 만담은 서서히 쇠퇴할 것이라고 늘 말씀하시던 터였다.
국악과 분리된 만담은 대중과 점점 멀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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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서민들의 자연발생적 예술인 만담이 서민들에게서 멀어졌는가? 장 선생은 “우리는 새로운 장르가 나오면 예전 우리의 문화를 무시하고 보존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며 아쉬움을 토로한다. 지금 종로2가 피맛골을 전통을 보존하기는커녕 큰 건물 하나 덩그라니 지어놓고 식당들을 위생적으로 만들었다면서 지하로 집어넣어버렸다. 원래 피맛골은 양반에 대한 저항정신이 숨어있는 장소로 양반들이 말을 타고 흙먼지를 내며 지나가면 누구라도 머리를 조아려야 했고 그런 모습이 싫어 뒷골목에서 양반 험담을 하게 된 것에서 유래되었다. 말을 피해서 골목으로 들어갔다 해서 ‘피맛골’이 된 것이다.
만담도 예외가 아니어서 우리의 전통으로 보존 계승할 생각을 하지 않으니 젊은이들에게서 잊혀져가고 있다. 만담은 궁중 연회를 기획하면서 이야기꺼리를 연결해주는 가교역할로 국악과 항상 함께 해왔는데 일제강점기에 소리와 만담으로 분리되어 버렸다. 신불출이란 자가 일본의 만자이를 극장무대에 올려 극으로 만들면서부터 분리되기 시작했는데, 일본의 만자이와 우리의 ‘만담’은 태생부터 다른 것이다. 재담과 만담은 남녀가 대등한 입장에서 주고받는 이야기를 통해서 전개하는 것인데 반해 일본의 만자이는 바보역할의 보케와 추궁하는 역할의 측코미의 두 캐릭터가 나와서 보케란 캐릭터를 바보로 만들면서 일반 관중들에게 쾌감을 주는 방식이다.
웃음을 만들 때 나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낮추면서 억지로 만드는 웃음은 진정한 웃음이 아니지 않은 가! 쉽게 웃음거리를 찾는 이런 방식이 대중들에게 인기를 끌자 우리의 만담은 서서히 대중들에게서 사라지게 된 것이다.
재담과 만담의 콘텐츠화가 나의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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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장광팔 선생은 목표는 만담의 보존과 발전, 계승이다. 현대식 콘텐츠와 결합하여 시대에 맞는 새로운 참웃음을 만들어 내겠다는 것이다.
2015년 ‘전통공연 예술진흥재단’ 연구사업에 ‘전통문화의 현대 콘텐츠화 방안’에 공모하여 당당히 선정되어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만담의 뿌리를 찾아서 박춘재, 신불출에 대한 연구도 하고 일본에 직접 가서 만자이와 라쿠고를 보면서 공부하면서 일본 만자이가 장수할 수 있는 이유와 중국 길림성에 ‘만담 문화재’를 찾아가 아직도 인기 있는 이유들을 살펴보면서 우리 만담의 발전방향을 모색하였다. 때문에 2016년에는 시연사업에도 선정되었는데 이론적 연구에서 점차 발전되어 가는 과정이다.
“만담을 해오면서 스스로 무언가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는데 그것이 바로 국악이 빠진 채 만담만 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면서, 예전처럼 만담과 국악이 어우러져야 ‘제 맛 나는 만담‘이 완성된다고 확신했다고 한다. 장 선생은 “국악과 다시 결합하여 젊은 층이 선호하는 스토리로 만들어져야 한다.”며, “이것이 국악과 만담이 함께 생존하고 발전하는 길이다!”라고 역설한다. 이 목표를 위해서 책을 쓰고 음성파일을 만들면서 후학들을 위하여 열심히 움직이고 있고 앞으로 더 나아가 대학에서도 우리의 재담과 만담을 가르치기 위하여 대학원 문화콘텐츠과에서 만담을 위한 제2의 인생을 준비 중이다.
“우리나라기 되살아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우리의 흥과 가락인 ‘국악(國樂)이 살아야 한다! 국악을 다시 살리기 위해서는 그 시초가 되는 재담과 만담이 먼저 살아나야 한다!!!” 농사를 안 지어 본 사람은 절대 농사를 지을 수 없는 것처럼, 서양음악에만 익숙해져버린 국민은 ’우리의 소리‘인 국악이 재미가 없을 수밖에 없지 않은 가! 따라서, 먼저 국악과 친숙해져야 하기에 초등학교 때부터 국악시간을 만들어 우리의 것을 가르쳐야 한다. 국악과 졸업생들을 최대한 활용하여 학교의 커리큘럼을 만들면 어릴 때부터 국악과 친해지도록 만들어야 한다. 민족 본연의 문화예술을 잃은 국민은 결국 나라의 근본을 잃고 표류하게 되는 것이다.
만담의 소실은 단지 만담뿐 아니라 우리의 전통과 문화도 함께 사라져 민족의 기틀이 함께 희석되는 버린다는 사실을 만담보존회 장광팔 선생과의 인터뷰로 깊이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다.
(재)국제농업개발원 webmaster@iadi.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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