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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겁쟁이와 나

기사승인 : 2017-03-03 19:48 기자 : 일송재단 국제농업개발원

간밤에 눈이 내려 온 세상이 하얗다.
하얀 눈을 바라보는 내가 흰 눈이 더 이상 반갑지만은 않은 것을 보면 확실히?나이가 들어가는 가보다. 아니 눈이 반갑지 만은 않은 것은 이미 겁쟁이인 나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어릴 때 정확하게 5세 때 나는 춘천에서 태어나 아직 춘천 조양동에서 살고 있었는데, 어머님과 함께 외출하던 나의 눈에 얼기설기 나무판과 칼날을 붙여 만든 얼음썰매가 눈에 들어왔다.
춘천에는 항상 눈이 많이 내렸는데, 그 해 겨울에도 어김없이 눈이 내려 얼어붙어 빙판이 된 길에서 썰매를 지치는 아이들이 있었다. 썰매를 타고 싶은 나는 엄마를 졸랐고 어떤 아이가 고맙게 내어준 썰매를 타게 되었다.

양 손에 들려진 스틱의 날카로운 꼬챙이를 얼음에 꼭 찍고 썰매를 앞으로 밀려는 순간?그만 얼어있는 길에 뿌려진 연탄재에 걸려 내가 탄 썰매는 그 자리에서 멈추고?나는 그대로 앞으로 꼬꾸라져버렸다.

아주 오래 전의 일이지만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 것인 지, 어머님께서 자주 말씀해주셔서 이야기를 기억하는 것인 지는 잘 모르지만 아뭇튼 썰매를 타보려다 입술이 심하게 찢어져 피가 많이 흐르는 사고를 당하고 만 것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어릴 때부터 미끄러운 것에 대한 공포가 있다.
눈이라도 살포시 쌓여 있는 곳을 지나게 되면 반드시 발로 눈을 밀어보고 그 아래 얼음이 얼어있는 지를 확인하고야 걸어가곤 했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어릴 때부터 겁쟁이로 통했다.
성인이 된 지금도 길이 좀 경사져있는 곳에 가면 먼저 덜컥 겁부터 난다.
차를 끌고 다녀도 눈이 온다고 하면 외출할 일이 너무 걱정되는데, 대중교통을 탄다고 해도 걸어가면서 미끄런 길이란 장벽을 마주하게 될 일이, 차를 운전하게 되면 차가 빙판길에 미끄러져 발생할 지도 모르는 사고에 대해서 미리 걱정해서 눈이 오면 남들보다 천근만근 중압감으로 다가온다.

겁쟁이 나는 누가 소리라도 크게 지르고 험악한 말씨만 써도 마음이 불편하고 겁이 난다.
미끄럽거나 좀 심하게 경사진 길을 보아도 겁부터 난다. 이런 겁쟁이가 어른이 되어 이제 환갑이 가까운 나이가 되어가면서 내 주장을 겁 없이 세상을 향해 소리 내고 있는 현실을 돌아보면서 과연 이제 내 속의 겁쟁이는 어디로 숨었는가 했었는데, 역시나 간밤에 내린 눈길을 보며 창가에서 시름에 잠긴 나를 보면 '겁쟁이 나'는 내 속에 그대로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인생의 하루하루 매순간에 우리는 의식하던 못하던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
눈길에 차를 끌고 나갈 것인 지, 대중교통을 이용할 것인지 아니면 외출자체를 해야 할지 말지를 결정해야 한다.
매 순간순간 자잘한 결정에서부터 인생의 중요한 큰 결정에 이르기까지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그럼 잘 살기 위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가.

선택을 결정하는 데는 나름의 기준이 있을 것인데, 인생의 목표를 어디다 두었는가와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등 ‘삶의 중심’을 어디에 두는 가에 따라 선택의 방향은 달라질 것이다.
인생의 기준은 시대별로 변해가고 지역적으로도 다르겠지만, 과거에 가정에서는 효를 다하고 나라에 충성하면서, 내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사회 공통적 기준과 개개인 인생의 기준이 있었다고 본다.

그런데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참 요지경인데 사람에 따라 삶을 사는 기준, 즉 잣대가 변화하고 있다는 말이다.
황당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는 “소설 쓰네“하면서 불신을 표현하고, 현실적으로 공감 가지 않는 일들에 대해 웃어넘기거나 아무리 세상에 떠도는 말이라 해도 누군가에 의해 조작되었을 것이라 미루어 짐작하기도 한다.
그런데 최근 한국을 시끄럽게 하는 일련의 사태들, 소설보다 더 소설같인 팩트를 너무 많이 접하다 보니 과연 우리의 윤리와 도덕, 관념 속에 존재하는 것들이 참 진리인가 싶은 생각까지 들 때가 있다.

인생은 미완성이고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것이 진리이니, 부족한 우리들 인생에 다양한 소설과 같은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하다가도, 소설보다 더 소설과 같은 사건들 속에서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은 과연 어떤 인생의 기준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가에 대한 의구심마저 든다.

언젠가부터 나는 인간의 삶은 윤회한다고 믿으며 살아간다.
한번 밖에 없는 삶이라면 너무도 억울한 때문이기도 하고 내 속에 여러모로 전생의 흔적들이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윤회를 믿는 가장 큰 이유는 나처럼 부족하고 이기적인 사람이 세상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더불어 상생하면서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번 삶이 끝이 아니라는 절대적 믿음이 내 인생철학 밑바닥에 깔려있어야 되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단 한번 살다 사라지는 존재라면 은행 강도 짓이라도 해서 잘 먹고 잘살아보아야 하지 않느냐는 상대적 박탈감과 억울함이 생기기 때문이다.

만약 나란 존재가 딱 한번 태어났다 영원히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존재라면 나는 여기 대한민국에서, 완벽하지 않은 미모로, 여자로, 크게 똑똑하지도 않고, 큰 집에서 떵떵거리면서 삼성의 이재용처럼 살아보지도 못하고, 세상 멋진 곳들도 마음껏 여행하지 못하고, 지극히 평범한 소시민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내 인생이 어찌 억울하지 않겠는가!
남을 속이고라도 얻고 싶은 것을 최대한 쟁취하여 나의 행복과 나의 한정된 시간을 위해 최선을 다하여 살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소돔과 고모라 시대에서처럼 인간이 타락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서 '희망'이란 것을 빼앗아버리기만 하면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일이 보장되지 않는 인생이라면 오늘을 즐기고 맘껏 향유하는 것이 인생의 지고의 선(善)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우리에게 내일이란 희망이 있다면?
우리에게 다음 생이 기다리고 있다면 우리는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내가 윤회를 믿게 되면서 이번 나의 인생을 학교에서 공부하러 온 것이라 생각하면서 살게 되었다. 영혼을 갈고 닦기 위한 학교가 바로 이번 인생으로 누구는 수학을 배우고, 누구는 영어를 배우는 것이 과제이며 또한 누구는 초등학교 과정을 배우고 또 다른 누구는 대학교 과정을 이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비교해보면 조금 어리석은 사람도 있고, 더 현명한 사람도 있으며 각자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고 활동하는 영역도 다를 수 밖에 없다.
누구는 열심히 더 공부하러 와서 정신 없이 바삐 살고, 또 다른 누구는 전생에 너무 힘겨운 생을 살았기에 이번 생은 좀 적당히 슬슬 놀면서 쉬다 가려고 왔기 때문에 각자의 인생이 다 다른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현재의 위치나 상태가 달라도 결국 그들도 향해 가는 길은 같기에 우리는 평등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이지, 현재의 위치와 모습이 같은 수는 없는 것이리라.
현재의 모습만을 가지고 평등불평등을 따진다면 옳지 않은 판단 기준이라고 나는 보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인생살이가 급하지 않게 되고 덜 억울해지기 때문에 나는 누가 뭐라 해도 윤회를 믿는다. 윤회 속에서 이번 생에서는 이런 것을 공부하고 내 영혼을 얼마만큼 갈고 닦아서 이번 학습을 포기하지 않고 주어진 과정을 잘 마쳐서 졸업하고 가야 한다는 의무감을 가지고 매일을 산다.

세상의 만물은 우주의 먼지와 물에서 탄생한 단세포에서 출발하여 발전한 다세포 생명체들로 진화되었기에 결국 만물의 시작은?같고 무생물과 생물, 식물과 동물까지 모두 조화롭게 하나가 되어 상생하는 세상이 천국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나하나 차근차근 배워나가면서 정화된 영혼들이 존재하는 우주, 상생과 화합, 사랑이 우주섭리이고 지고의 선(善)이며 진리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상생하기 위해서 우리 인간들은 모자라고 어리석은 부분을 육체의 질병이나 생활의 어려움, 가족이나 인간간의 불화 등 다양한 고통을 받게 되고 이런 고통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들이?결국 우리를 가르치는 학교의 단계적 배움의 방식이라고 믿게 되었다.
그 단계단계를 올라가다 보면 우리는 더 현명해지고 이웃을 더 배려하며 사랑하고, 우주의 참진리인 하모니(조화) 속에서 소음이 아닌, 서로 다르지만 조화롭게 어우러져 아름다운 음악으로 다시 태어나는 빛과 같은 에너지의 영혼으로 승화할 것이라고 믿는다.

겁쟁이 작은 소녀가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 간밤에 내린 눈길을 바라보면서 인간이 살아가야 하는 참 길(道)에 대한 상념에 젖는다.
우리는 길이 아무리 미끄럽고 두려워도 발을 내딛어 길을 가야 하는 존재들이다.
가는 길이 험하더라도 결국 이 길의 종착역에 도달해야 할 존재들.
서로 부족하니까 더 사랑하고 손을 잡아주면서 함께 가야 하는 길.
인생 길 가는 우리의 희로애락 속에 오늘도 겁쟁이 나는 눈길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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