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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락동 농수산물시장 소고(小考)

기사승인 : 2016-04-01 17:44 기자 : 일송재단 국제농업개발원

1978년 추석직후, 동아일보 기자출신인 최원각氏(이승만 정권을 비판하여 구금경력이 있고 故이만섭 국회의장과는 동아일보 입사동기임)가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정책건의 조건으로 거금을 얻어왔다면서 좋은 아이디어를 내어보라고 했다. 나는 당시 새마을담당특보(박진환 박사)실 소속으로 신갈농민학교장과 청와대시범농장장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과외로 활동할 수 있는 시간적 영역이 있었다.
그날 이후 지금의 경복궁역 옆에 있던 내자호텔에 20여일동안 방을 잡고 3가지 정책 건의서를 만들었다.

1. 고졸입대자를 논산훈련소에서 분류하여 이들을 군대생활 3년 동안에 전문대학 2년 과정을 이수시키고 제대후 4년제 대학에 3학년 편입되도록 군대를 각 기술분야별로 확대시켜 전문화 교육장으로 만들어야 한다. 즉, 군대를 전인교육장으로 전환하도록 하자.
2. 전국 도단위 10곳에 농군사관학교를 만들어 새마을교육과 소득모범농가 창출을 위한 전액국비 학과(50명 기준)를 만들어 국제적 농민교육으로 부상시키자.
3. 용산 복개천에 있는 유사도매시장을 양재동으로 옮겨 법정관리 도매시장을 만들어 농민들이 안심하고 판매를 의뢰하는 새로운 경매시장을 만들자.

이것은 즉각 대통령께 보고되었고, 1안은 국방부가 거부했으나 10년후 유사한 내용으로 실천되었다.
2안은 문교부 TF팀이 만들어져 책임자는 정태수 차관, 실무진은 김주달 서기관이 담당했고, 나는 전문위원으로 참여했다. 자영농과로 시작되었고 1980년 3월에 기숙사가 완공되고 입학식이 있었으나 박대통령께서는 보시지를 못했다. 입학식에 반드시 참석할 것이라고 하셨는데…. 그날 한없이 울었다.
3안은 국가 예산으로 감당하기가 너무 크고, 또 농민들의 농산물 유통에 관심이 지대하신 대통령의 특별 관심사라서 직접지시를 받는 구조로 꾸며졌고 실무책임자는 당시 조일호 농림부 농업경제과장(훗날 차관을 지냈음)과 서울시는 유OO 상정국장, 농경연에는 성배영 박사가 참여했다. 나는 전문위원으로 관여했다. 우리 팀은 예산 확보를 위해 세계은행(IBRD)를 방문했고, 아시아 팀장은 한국출신 전도일 박사(전두환 조카)였다. 전 박사의 협조로 도매시장 이전용 차관 647억원을 얻어올 수 있었다.
이전 장소는 박 대통령 지시로 지금의 화훼공판장은 화훼도매시장, 지금의 양곡공판장은 양곡도매시장, 지금의 교육문화회관(The K Hotel)은 축산도매시장, 국립현충원 앞에서 고속버스터미널을 지나 고속도로 입구까지의 반포천을 복개(약4만여평)하여 청계천 공구상가를 옮겨 공구도매시장, 또 안양에서 양재동도매시장구역까지 화물열차노선도 계획했다.(당시는 경부고속도로 톨게이트도 이웃해 있었다)
차관은 1979년 10월 26일 며칠 전에 결정되었으나 박 대통령 서거로 인하여 만2년 후에 집행되었고, 대통령께서는 여망하던 도매시장 준공을 보시지 못했다.

전두환 장군의 국보위는 이것을 가락동과 양재동으로 분산시켜 버렸다. 훗날 소문에 전두환 대통령의 부인인 이순자 여사가 가락동에 많은 토지를 확보했기 때문에 가락동으로 시장을 옮겼다고 했다.
오늘의 소고(小考)는 가락동으로 이전된 가락농수산물시장의 변화과정을 논해보고자 한다.
금년이 가락동 시장개설 만30년이고, 나는 줄곧 시장 내 사무실을 두고 지켜보고 살아왔다.
개설 당시에 비하여 물량과 거래금액이 엄청나게 늘어나서 지금은 1일 거래금액 약150억원, 출입차량 4만2천대, 이용고객 약 13만명(년간 4천4백만명)이다.
획기적인 변화는 당시 시장 내 운반용 리어카가 모두 전동차로, 순수인력으로 하던 상하차가 전부 지게차로, 또 출하농산물이 전부 규격포장으로 바뀌었다. 이상과 같은 변화는 지극히 당연하여 자랑거리가 아니다. 그러나 30년 동안에 출하되는 농산물 종류의 변화를 보면 우리 국민들의 식생활단면도를 확연히 보여 주는 포인트가 있어 많은 감회를 느끼게 한다.
사례를 열거하면, 김장철이 사라졌다. 김치냉장고 등장과 중국산 김치수입이 원인이고, 비포장으로 출하되던 무ㆍ배추가 완전 규격포장화 된 것도 발전이다. 또 절임배추는 도매시장을 외면하고 산지에서 소비자 댁으로 택배시스템이 응용되는 것은 농가소득 향상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개장 당시 감자 물량의 1/10 수준이던 고구마의 소비가 꾸준히 늘어 지금은 감자 소비의 70%까지 육박하고 있는 것은 국민들이 달콤한 것을 선호하는 것이 원인이라고 판단된다. 고구마와 성질이 유사한 단호박 소비가 개장당시 보다 100배 확장된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아울러 식생활의 서구화로 서양채소류 반입이 늘어났다. 브로콜리의 경우 개장당시인 1985년에 비하여 무려 1,000배나 늘어난 반면 콜리플라워는 겨우 7배 늘어났다.
한편 사라진 품목도 있다. 적환20일무는 케이크 장식용이었는데 딸기와 블루베리에 시장을 내주었고, 나물참외(나라스케)와 동아도 사라졌다. 또 초당옥수수는 찰옥수수에게 시장을 내어 주었다. 멀지 않아 알록이 옥수수가 대세가 될 것이다. 참외와 수박은 계절없이 출하되고, FTA덕분으로 외국 과채류들이 소비자 눈에 익숙하다.
수산물은 시장내 거래되는 것 중 순수 국내산은 김과 미역뿐이고, 멸치도 동남아산이 시장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생선류의 70%는 수입산이다. 캐나다, 러시아, 칠레, 노르웨이, 핀란드 등 원양어업의 발달로 영역자체가 지구촌이다.
이렇듯 시장에 출하되는 농수산물은 변화무쌍한데, 시장내 유통구조는 개장 당시의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화가 없어 영락없는 여의도 정치환경의 붕어빵 현상이다. 답은 뻔하지만 아무도 손을 보지 못하여 시장내 유통구조 개선은 남의 나라 일처럼 답답함을 금치 못한다.

(재)국제농업개발원  webmaster@iadi.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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