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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해주 남북한 식량기지 구축 전진대회에 즈음하여 (경과보고서)

기사승인 : 2015-11-01 17:31 기자 : 일송재단 국제농업개발원

● 연해주는 한민족의 땅이니 빨리 확보하라
보고자는 한ㆍ소 수교(1990년 9월 30일) 두 달 전 연해주 우수리스크에 소재한 「프리모리예(연해주) 농업아카데미」를 찾았습니다.
알렉산드르 A. 데민 총장은 저를 보자마자 “이곳은 당신들의 조상과 고려인들이 개척한 땅이니 빨리 확보하라”고 하면서, “모스크바 대통령궁으로부터 당신이 이곳을 방문한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보고자는 1년전 중앙시베리아 군사도시 비스크(일명 백색의 지하도시 : 핵무기 제조공장지대)에서 소련 대통령을 만났고 연해주 방문을 추천받았습니다.
데민 총장은 이곳 대학에 북한 교환교수 3명(김덕수 : 주체아카데미부총장, 김종수 : 보위부 고위인사겸감독관, 문상주 : 주체아카데미연구위원)이 근무하므로 저에게 박사과정 입학을 추천했습니다. 저는 귀국후 정보당국에 전후 사정을 설명하고 이듬해 정부자금으로 박사과정을 입학했고, 한국인 최초로 외국에서 북한교수로부터 강의를 받았습니다.(이들 3인은 훗날 황장엽 망명사건 때 대동강변에서 공개 총살당했음)
데민 총장은 1937년 고려인 강제이주 당시 연해주에는 벼농사, 인삼재배, 연근해 어업 등 모든 농어업과 생산물이 고려인들 손에 좌우되었고, 신문사 7개, 학교(전문대 1곳과 초ㆍ중ㆍ고등학교) 11개가 있었으며, 유동인구 포함 무려 30여 만 명의 고려인들이 거주했다고 했습니다.
그는 “이곳의 주인은 분명 한민족이고, 얼마후면 한ㆍ소 수교가 될 예정이니 빨리 돈보따리 싸들고 넓고 넓은 연해주 농지를 확보하라”고 신신당부했습니다. 또 백색인종인 러시아인들은 이방인에 불과하다는 역설적인 논리를 주장했는데, 그는 우크라이나 태생이었습니다.

● 한ㆍ소 수교때 제공된 차관과 토지를 교환하자
1990년 9월 30일 한ㆍ소 수교 및 러시아 자동승계(1991. 12. 27) 수교때 30억달러(미화)를 제공하기로 했고 14억7천만달러가 건너갈 무렵 소련(고르바쵸프)은 붕괴되었습니다. 1992년 10월, 독립국가연합 대통령이 된 고르바쵸프는 노태우 대통령 당시 비서실장 및 총리를 지낸 노재봉 박사를 일본 동경제국호텔에서 비공개 면담을 하는 자리에서 “엘친이 승계한 차관 14억7천만 달러의 회수가 불가능하다. 대신에 연해주에 남ㆍ북한과 고려인들이 모여 사는 특별구역을 할애해 줄 것이다. 이 땅을 받으라”고 권유했습니다. 소위 고려인들이 주장하는 조상들의 땅인 발해국(고려인 자치구역) 건설이었습니다.
보고자가 조사단장이 되어 고르바쵸프가 할애했다는 달레네골스키郡은 블라디보스톡 국제공항에서 헬기로 2시간 거리에 있는 경상북도와 비슷한 넓이에 시호테알른 산맥을 끼고 있는 목초가 풍부한 초원지대였습니다. 항구도 있고, 도로도 원만했고 산중턱마다 땅굴들이 수없이 보였지만, 제가 찾는 논ㆍ밭이 보이질 않았습니다. 현장답사 내용을 노태우 대통령께 보고했고, 농지가 없어 고려인 정착과 북한 식량지원 기지 구축에는 불가능하니 농지가 풍부한 다른 지역으로 할당을 요구하는 것으로 정리했습니다.
훗날 이 소식을 듣고 고르바쵸프는 매우 안타깝다는 의사를 전달해왔습니다. 그곳은 극동러시아 지역 내 유일한 양질의 우라늄 광산이 있고 금광이 있는 지역이라서 고르비가 특별히 할애한 그야말로 황금의 땅이었습니다.
이후 저의 잘못된 판단으로 국가와 민족 앞에 큰 죄를 지은 죄책감에 공개석상에서 대국민 사과를 했고 오늘 이 자리에서도 다시 고려인을 포함한 남ㆍ북한 모든 분들께 발해국 회복이 늦어지고 있음을 충심으로 사죄 올립니다.

● 전두환 前대통령의 「흥개(興凱)湖 프로젝트」
1995년 봄 어느 날. 전두환 前대통령의 동생 전경환으로부터 “형님께서 한 나라에 전직 대통령이 3명(최규하, 전두환, 노태우)이나 있으면 현직 대통령이 불편해 하니 내가 이병화를 따라 연해주에서 농사지어 북한 식량난을 해결하겠다.”면서 농지 확보를 부탁했습니다. 당시는 북한 식량 부족분이 매년 약80~100만 톤이었습니다. 필요면적 논ㆍ밭 약18만ha(제주도 넓이)에 대한 구입비용 63억 원을 전 前대통령은 쌍용빌딩에 맡겼고 저는 2억원을 우선 가지고 계약을 치렀습니다. 그러나 며칠 후 서울지검특수부 김용철 검사(훗날 삼성그룹 비자금폭로 변호사)에게 61억 원은 비자금으로 압류당했습니다. 전두환 前대통령의 연해주 개발 꿈은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한편 고합그룹 장치혁 회장은 독립운동가인 선친 장도빈 박사의 유지를 받들어 연해주 농지 확보에 열심이었고, 중앙아시아에서 귀향하는 많은 고려인들을 돌보았습니다. 보고자는 2억 원으로 계약을 치룬 농지를 승계하기 위해 모든 재산을 끌어모아 충당했습니다.
전두환 前대통령의 연해주 농지 확보 내용은 1996년 월간조선 7월호에 “전두환 연해주 개발 = 못다핀 ‘발해의 꿈’”이라는 특집편에 자세히 나와있습니다.
당시 연해주에서 가장 좋은 논ㆍ밭을 보유한 ‘소프호즈=국영농장’ 책임자 15명을 모아 한국과 공동으로 영농을 하도록 조치한 사람은 고르바쵸프의 심복인 데민 총장이었습니다. 저는 박사과정 입학 후 6년 만에 데민 총장으로부터 농업경영학 깐디닥트를 받았는데, 이것은 한국인 최초로 극동지역 대학에서 받은 학위였습니다.

● 권영해 前안기부장의 「광개토대왕 프로젝트」
전두환 前대통령의 연해주 진출 꿈이 허망하게 끝난 직후 국가안전기획부(이하 안기부) 권영해 부장은 엘친 대통령 포고령 제64호와 러시아연방최고회의결정 제472호에 근거하고 러시아 농지법 개혁위원장 말렌코프의 한국방문 연설문에 기초하여 연해주 호롤郡 일대에 중앙아시아에서 귀향하는 고려인과 벌목공, 탈북자들을 위한 5천명 수용 대단위 농장을 만들고 생산되는 농산물로 북한을 지원하는 계획을 수립하였습니다. 이것이 남ㆍ북 공히 광개토대왕 프로젝트로 칭하고 북측 담당자는 극동러시아 파견 총책 최진철(가명) 대좌, 남측 담당자는 보고자가 맡도록 당국은 조치해 주었습니다.
1996년 10월 1일, 블라디보스톡 소재 한국총영사관의 최득근 부총영사(안기부 백색요원)가 벌목공으로 위장한 북한 암살요원에게 피살당했고, 이와는 별도로 1년전 북측의 소행으로 하바로브스크에서 이주현 박사 부부(재미교포) 피살과 나홋카 주재 토지공사 요원 2명 사망 등 복잡한 사건들이 연속으로 발생하자 김영삼 대통령은 연해주농업개발을 중단시켰고, 이후 북측의 최진철은 아무르 강변 건너에 있는 유대인자치주로 피신한 후 모사드의 안내로 이스라엘로 망명하였습니다.
1997년 10월, 대우재단 후원으로 「러시아 연해주 강제이주 60년」 국제 세미나에 참석한 연해주 지방정부 소수민족 국장인 자이카-지나이다 여사는 1,500명 정도의 고려인과 남ㆍ북한 사람들이 구성된 마을 30개를 만들면 고려인 특별구역(준자치구역)이 가능하다는 내용을 안기부와 외교통상부에 전달했습니다. 그러나 광개토대왕 프로젝트는 정부가 관심을 가지지 않아 수면 아래로 흔적을 감추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재단법인 국제농업개발원 제3대 이사장으로 취임한 박의근 박사(前(주)보나에스 회장)가 연해주농업개발의 필요성을 故김수환 추기경과 대주교들에게 건의하였습니다. 카톨릭재단에서는 거금을 투입하여 농촌후계자들에게 보고자 등이 확보 중인 농지들을 공여하려고 했으나, 남아도는 국내산 쌀을 북한에 보내기 원하는 농림부 장관 등 해당 공무원과 농민후계자들의 거부로 무산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박의근 이사장의 노력으로 벌목을 하지 않는 5월1일~10월31일 사이 6개월 동안 곡실농장과 사슴 및 밍크농장에 벌목공들의 일자리 마련은 연해주 내에서 남ㆍ북한 관계를 대체로 원만하게 해주었습니다.

● 대순진리회의 연해주 진출
1997년 10월말, 연해주 국제적십자협회 총재 코코노프 박사, 호롤군수 알렉산드르 야쿠샤와 보고자 등 3인은 연해주 생산 벼 3개 화차분을 북한 함경북도 적십자 총재(함북도 불교연맹 허길수가 겸직함)에게 전달하자는 합의를 도출합니다.
처음 시작되는 수송이라 러시아 및 남ㆍ북한 허가와 식물검역, 국제운송규정 각서와 국제보험 등 서류 준비에만 1개월이 걸린 끝에 북한 민경련 정운업 회장을 거쳐 전달하였습니다. 이 사건을 눈여겨 본 사람은 대순진리회 종단 임원들과 15대 대통령에 당선된 김대중 당선자였습니다.
강증산 선생의 얼을 이어받아 민족종교로 자처하는 대순진리회는 「娥軍卽, 我軍」이라는 증산 선생의 어록에 매우 관심이 높았습니다. 이것은 “아라사(러시아) 군대가 곧 내 군대이니라”라는 뜻입니다. 이 어록에 따라 이유종 종무원장은 과감히 연해주 농업투자를 지시했고 농장의 중요 건물을 러시아 민병대가 지켜주는 “러시아 군대가 내 군대”가 되는 현상을 만들었습니다.
대순진리회가 확보한 농장과 철도역, 주유소, 도정공장, 곡물창고, 축산기지 등의 면적은 제주도 넓이보다 훨씬 큽니다. 이 모두를 저희 재단에서 연결했습니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가우디, 한농연경기도연합회, 남양알로에, 농촌지도자회 등이 진출했으나 러시아 법령 미비로 인해 중간에 포기했습니다.
지금은 푸틴 정권의 농지법 개정으로 인해 많이 발전했습니다. 이에 따라 현대중공업, 인탑스 등 국내 유명기업들이 연해주 농업에 뛰어들었습니다. 분명한 것은 연해주 농지 확보의 첫째 목적은 북한 식량난 해결이고, 둘째가 투자가들의 이익창출 입니다. 오늘 현재 연해주는 한국정부 농무관도 파견되어 있고, 농지구입에 정부지원도 해주는 등 격세지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 DJ정부와 연해주 곡물지원
15대 김대중 대통령 취임을 한 달 앞두고 프레스센터 19층 식당에서 DJ, 이종찬(안기부장 내정자), 김성훈 교수(농림부장관 내정자), 김중권(비서실장 내정자) 등 요인들과 보고자가 만났습니다.
당선자께서는 보고자에게 “향후 이종찬 동지가 지원할 것이니 연해주 생산곡물(벼)을 북한에 많이 보내주라”고 당부했습니다. 저는 “연해주에 진출한 한국기업들이 생산한 곡물만 수매할 것”이라고 답하고, “당선자께서 지정하는 곳에 보내줄 테니 1톤당 수수료 100달러를 주세요.”라고 했더니 쾌히 승락했습니다.
이후 DJ정부가 끝날 때까지 27회, 약9,800톤을 보내주었습니다. 북측의 수취인은 평양과기대학을 설립한 김진경 목사와 긴밀한 관계가 있는 대외경제추진위원회(대경추), 조선원예공사(김재왕 사장), 민경련(정운업 회장, 안복일 사장), 조선불교총연맹(허길수) 등이었습니다. 러시아 광괘철도가 가는 나선市 또는 두만강구역까지만 수송하면 나머지 구간은 수취인들이 운송해 가는데, 주로 청진 이북지역에만 공급되었습니다. 간혹 청진 아래에 위치한 어랑군 농업협동위원회에도 보냈는데, 이곳의 인민위원장이 유명 소설가 이문열의 아버지 이원철氏였는데 저와는 같은 종친으로 간접적인 내왕이 있었습니다.
반면에 연해주에서 발송하는 한국측 단체는  남양알로에, 한농연경기도연합회, 농촌지도자연합회, 재단법인 국제농업개발원, 대순진리회 등 다양하게 명칭을 나누어 사용했습니다. 훗날 연해주 곡물지원 사건이 월간조선 2008년 7월호에 폭로되었을 때, 박지원(前DJ비서실장)은 ‘사실무근’으로, 당시 국정원장이었던 이종찬은 ‘기억에 없다’라고 했습니다. 구체적 내용은 이번 대회에 나누어 드리는 책자 속에 모든 진실이 담겨 있습니다. 심지어 스위스를 거쳐 북측에 송금한 통장사본도 책자 속에 있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연해주 곡물을 실은 러시아 기관차는 지금도 판문점을 관통하여 도라산역으로 올 수 있다.
2000년 6.15 남ㆍ북 정상회담 이후 같은 해 12월, 김대중 대통령은 노벨평화상을 받자마자 경의선 철도관통을 약속대로 진행했습니다. 이때 연해주 쌀 생산 최대단지인 호롤郡 군수로 재직한 알렉산드르-야쿠샤(훗날 연해주식량공사 사장 재임)는 극동철도위원회로부터 확인을 했다면서 “연해주 생산곡물을 싣고 비무장지대를 관통하여 한국에 배달해 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충격적인 이 말을 OSJD(국제철도협력기구)와 SMGS(국제철도화물수송기구)에 확인결과, 사실이었고 당장 실행가능 한 것이었습니다.
러시아와 북한은 OSJD 회원국이고, 한국은 비회원국입니다. 연해주에서 곡물을 실은 러시아 기관차가 핫산역 또는 선봉역에서 표준궤 기관차로 바꾸고 북한에 진입 후 남한으로 가겠다고 하면 북한은 러시아 기관차를 막을 법적 대응이 없습니다. 이것은 북한 화물기관차가 러시아를 경유하여 제3국으로 갈 수 있듯이 러시아는 북한을 경유해 한국에 얼마든지 올 수 있다는 것인데, 오로지 러시아 기관차에만 해당됩니다.
DJ정부는 노벨상 수상 이후 국제적 대형이벤트가 될 수 있는 이것을 다음 정권으로 미루었고, 2007년 말에 노무현 정부가 계획을 세웠으나 러시아측의 외면으로 무산되었습니다.
곡물수송 비무장지대 관통은 북한측은 반대를 하지 않고 오히려 반기는 기색이었습니다. 1/10의 배정까지 정했습니다. 11개 화차를 실으면 10개는 북한몫(노동자 노임대신 식량)이고 1개는 남한몫이라는 방식이고, 러시아는 남한에 온 화차에 러시아 생필품을 운반하는 시스템인데 북한철도 노후화가 회의 때마다 문제가 된다고 했습니다.
요약하면 북한 철길이 아무리 노후화되어도 기차는 다닙니다. 남북통일을 위하여 곡물수송 이벤트는 국민들에게 통일의 꿈을 일깨워 주는 행사가 될 것이므로 지금도 러시아는 이것을 환영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박근혜 대통령은 즉각 추진할 것을 건의 올립니다.

● 푸틴 특사가 국제농업개발원을 방문하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관은 “정권은 타도대상이고, 인민은 구제대상이다”이고, “북한 식량지원은 반드시 연해주에서 생산한 곡물로 충당하자”라는 말을 국회의원시절부터 주장해왔습니다. 보고자에게도 DJ시절 곡물지원 사례를 수차례 질문했고, 이에 따라 대선기간인 2012년 11월 23일 박사모와 공동으로 연해주 생산 보리 2개 화차를 나선市에 보냈고, 그 대가로 40일 동안 박근혜 후보에 대한 비난방송을 중단한 바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18대) 13일 전인 2월 12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국제농업개발원 주관으로 “「러시아 연해주 농업경제특구」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윤진식 의원과 연해주국립농업아카데미가 공동으로 국제세미나를 개최하였습니다. 이날 권영해 前안기부장을 재단 상임고문으로 모시는 행사도 겸했습니다.
세미나에서 러시아측 발표자인 타티아나-포텐코 부학장의 주제발표는 푸틴의 극동러시아 개발 중 연해주개발이 핵심이라고 하였고, 발표한 문건은 대통령궁으로부터 심의를 받은 공식 문건과 같다고 했습니다.
세미나 개최 3개월 후인 5월 23일, 모스크바 대통령궁으로부터 푸틴의 비공개 특사가 한국 국제농업개발원을 방문하는데 권영해 前안기부장이 반드시 임석할 것을 조건으로 세웠습니다. 그날 비공개 특사는 대사관 통역을 대동했습니다. 재단 사무실을 둘러보고 재단 존재와 발행하는 잡지 및 보고자와 직원들의 신분 등을 확인한 후, “푸틴 대통령은 절대적으로 「연해주 농업경제특구」 건설을 지지한다.”라는 말을 전하려 왔다고 했습니다. 더불어 「한-러」 협상은 언제나 그렇듯이 한국측이 먼저 문제를 발생시킨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한국 대통령의 유통기간은 레임덕을 빼고 나면 3년에 불과하고, 해당장관은 1년이고, 담당공무원은 2년인데, 아무리 판단해도 당신들 두 사람(권영해, 이병화)이 20년 이상 이 일에 매달리고 있으니 민간인 파트너로는 최적”이라고 했습니다. 비공개 특사는 현직 연방보안군(前KGB) 대좌이고 푸틴의 측근 중 한 명이라고 며칠 후 주한러시아 대사가 말했습니다.
특사 방문 이후 우리 두 사람은 극동러시아 개발 관련 방한하는 러시아측 고위 공직자들을 수차례 만났고, 주한러시아 대사, 주한무역대표부 등을 방문하고 좌담회를 가졌습니다. 이즈음 박근혜 대통령은 “통일은 대박이다“,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라는 용어를 사용했고, 러시아측은 매우 큰 희망으로 관망했습니다. 이에 따라 푸틴 정부는 극동러시아 개발에 무엇을 원하는지 한국측이 먼저 그림을 그려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 주변에는 중국ㆍ미국ㆍ일본 전문가는 있어도 러시아 전문가는 없고, 중국과 미국 눈치 보느라 대담하게 접근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답답함을 느낀 푸틴 정부는 극동개발부 장관과 총통실(대통령 권한대행)을 동원하여 극동러시아에 북한군 전현직 장령급(장성) 1,500명에게 일자리를 줄 수 있다는 내용을 북측에 전달했는데, 이것은 50~100명 단위의 직장을 1천 5백 개 제공한다는 것과 동일하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푸틴 정부는 극동개발 정책으로 남ㆍ북한 통일에 기여하겠다는 것입니다.

● 시베리아 횡단철도는 반드시 TCR(러시아철도)라야 한다
“통일대박”과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같은 몸뚱이입니다. 중국횡단철도(TCR)는 압록강을 건너고 러시아횡단철도(TSR)는 두만강을 건넙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대박” 발언 이후,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는 언론보도와 세미나가 수십 번 개최되었습니다.
중국 통관은 만주리(TCR)와 몽골초입 자민우드(TMCR)를 통과하여 울란우테를 거쳐 유라시아로 가는데, 연해주 통과보다 약1,000km가 절약됩니다. 그러나 괘도가 달라서 우리 구역이 아닌 중국과 몽골에 환승시스템 비용을 비싸게 물어야 하고 전력사정이 달라 기관차를 교환해야 하는 구조인 반면, 연해주를 관통하는 노선은 비록 멀어도 광괘로 바꾸는 환승 운용을 나진ㆍ선봉에서 우리 손으로 하기 때문에 시간 조절과 비용이 훨씬 절약됩니다.
또한, 시베리아 자원개발과 직접 연계되기 때문에 철도 이용부담도 줄어듭니다. TCR은 우리(남ㆍ북한)에 이익이 보장되지 않지만 TSR은 남ㆍ북한 모두에게 큰 이익이 보장됩니다. 극동시베리아 가스관이 편승하고 자원(목재, 석탄, 광물 등)을 한국으로 실고오기 때문입니다. 이제 국민들은 어느 것이 진실인지 알아야 합니다.

● 지구촌 최고 블루오션은 북한 노동자와 극동러시아 자원이다
북한 노동자가 가장 많이 진출한 곳은 연해주를 포함한 극동러시아입니다. 벌목공, 건설공, 광산일꾼, 수산일꾼, 농업일꾼, 선박수리공 등 무려 5만 여명이 동쪽으로는 캄챠카반도부터 북쪽으로는 사하(야쿠티아)자치공화국의 다이아몬드 광산에까지 나가있습니다. 이들의 노동력은 매우 양질입니다. 1970년대 남한 노동자들이 중동 열사에서 일하는 바로 그 모습입니다.
남ㆍ북한 당국자가 판문점에 모여 앉아 아무리 통일회담을 해도 효과가 나지 않는다고 러시아측은 주장합니다. 남ㆍ북한 고위 당국자가 극동러시아 자원을 앞에 두고 마주앉고 푸틴 특명을 받은 극동러시아 개발부 장관(위원장)이 주제하면 3자 모두 국부창출을 눈앞에 두고 거짓말 회의를 못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남ㆍ북 통일은 극동러시아 자원개발 현장에서 예행연습을 하면서 시작하라고 푸틴 정부는 권하고 있습니다.
남한 면적 64배인 세계 최고의 자원보고인 극동러시아는 인구가 7백만명도 되지 않아 그냥 두면 중국의 인해전술에 의해 강탈당할 수 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이곳에서 남한은 청년 일자리를 찾고 북한은 식량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바로 이 땅은 우리 조상들이 웅거했던 곳입니다. 식량기지 구축은 러시아 당국이 절대적으로 원하고 있고 북한도 찬동하는데 문제는 우리에게 있습니다. 러시아 당국 책임자는 극동개발부장관이 전권을 위임받아 있고, 북한은 노동당이 담당하는데, 우리는 외무부ㆍ농림부ㆍ해수부ㆍ국토부ㆍ산자부ㆍ통일부ㆍ국정원 등 무려 7군데가 나눠있는 등 전적으로 책임지는 부서가 없습니다. 민주평통과 통일준비위원회가 할 수도 있으나 푸틴정부 부근에도 접근하지 못하고 있고 러시아측이 인정하는 정부측 전문가가 한명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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