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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온실

기사승인 : 2018-04-16 16:52 기자 : 일송재단 국제농업개발원

조선시대에 궁중에 온실이 있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것도 현대식 온실과 비교해 손색이 없는 첨단 영농시설이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우리 조상의 과학적 온실문화를 살펴보자.

정조시대의 온실 “창순루”
조선의 두 번째 궁궐인 창덕궁 후원으로 가다보면 창순루라는 건물이 있다. 이 창순루에 조선시대의 온실이 있었다. 창순루의 모습을 담고 있는 “동궐도”를 보면 반 타원형제로 만들어진 둥근 지붕에 창살이 없는 문, 쪽마루가 있는 창순루의 모습을 볼 수가 있다.

이 창순루에는 실내온도를 데워주는 ‘벽장’이란 시설이 있는데, 궁중에서 사용할 꽃을 언제라도 수확하기 위해 사용되던 정조대왕 시절의 온실이었다. 사실 온실에 대한 기록은 정조대왕시절의 동궐도에서 뿐만 아니라, 1471년 성종실록에 보면 궁궐에서 사용하는 꽃을 키우는 기관인 ‘장원서‘에서 영산홍 화분을 임금께 올렸다는 기록이 있다.

세조 때 강희안이 지은 원예 책 “양화소록”에 보면“토우”라 하여 움집에 대한 내용이 기록되어있는데, 그 내용이 온실과 유사한 형태이고. 조선왕조실록 연산군 시절에 이 토우에서 겨울에 시금치를 기르게 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조선시대 온실문화가 세상에 다시 빛을 보다
2001년 10월에 우연히 발견된 농서 속에서 그 해답이 풀렸다. 조선 세종시대에서 세조시대까지 의관 전순의는 “식료찬요“라는 의서를 지었고,”의방유취“를 공동 편찬하였는데, 의사이며 ”식의(식품학자)“인 그는 농사법과 음식조리법을 ”산가요록“에 남겨놓았다. 그 동안 내용을 알 수 없었던 전순의의 산가요록이 비로소 발견된 것이다.

“산가요록” 속에 남아있는 최고의 온실문화
산가요록으로 비로소 알려진 조선시대 온실은 산가요록이 발견되기 전까지 세계최초로 알려졌던 1619년의 독일 하이델베르크 온실보다 무려 179년이나 앞선 것으로 우리 조상들의 지혜에 감복하게 된다.

산가요록에는 63가지의 술 빚는 법, 장담기, 식초만들기, 식품저장법 등을 포함하여 229가지 조리법과 27가지 채소와 과일, 생선과 육류의 보관법까지 기록되어있다. 또한 그토록 알고 싶었던 온실 만드는 방법이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겨울철에 신선한 채소를 생산하기 위해 온실을 만들었다고 기록되어있다.

동절양채(冬節養菜)를 위한 조선시대 온실의 구조와 관리방법
1.기름칠한 종이로 삼면을 막아 유리창의 역할을 하게 만들어졌다.
2.구들을 놓고 온돌 위에 한자 반 높이(45센티)의 흙을 쌓아서 채소를 심었다.
3.건조한 저녁에 바람이 들어오지 않도록 하고, 날이 많이 추우면 멍석 같은 것으로 덮어주었다가 날이 풀리면 즉시 걷어낸다.
4. 날마다 물을 뿌려 방안에 항상 이슬이 맺히고 흙이 마르지 않게 한다.
5.담밖에 솥을 걸고 둥글고 긴 통을 연결하여 솥에 아침과 저녁으로 불을 태어 수증기가 방을 훈훈하게 해준다.

조선시대 온실이 왜 특별한가?
여러 다른 나라에도 온실로 추정되는 기록들이 존재했다. 중국 후한시대 “한서”에는 겨울에 파, 부추, 채소, 나무을 재배하는데 지붕을 덮고 울을 쳐서 불을 지폈다고 기록되어 있고, BC74-49년에 만들어진 “염철론”에도 비슷한 내용이 포함되어있으며, 8세기 당 현종은 불을 땐 방(화실)에 오이를 재배했다는 기록이 있다. 로마시대에도 겨울철 장미재배를 위해 운모와 활석으로 창문을 만들어 가열하여 온실을 만들기도 하였다.

그런데, 조선시대 온실이 왜 특별한 것일까? 그 것은 복원이 가능한 자세한 기록이 존재하고, 난방, 가습, 채광의 3대 조건이 잘 갖춰진 가장 과학적인 온실의 구조라는 것이다. 그 중 으뜸이 바로 온돌을 이용한 땅속 뿌리층 가온 방식이란 것이다.

ㄱ) 온돌을 이용한 땅속 뿌리층 가온 방식
독일 하이델베르크 온실은 난로를 이용해 상부의 공기층만 가열하는 방식으로
다른 기록에서 보여지는 다양한 온실의 방식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온돌은 한국 생활문화 중 가장 뛰어난 발명품으로 꼽히는데, 이 온돌이 겨울철 채소재배에까지 활용된 것이다.

식물의 생장을 위해서는 뿌리의 발육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최근에는 온실재배에 온수파이프를 활용하여 농사를 짓고 있는데, 이미 우리 선조들은 이런 방식을 조선시대부터 활용했던 것이다.

ㄴ) 기름먹인 한지를 이용한 온실효과
판유리가 없던 시절 조상들은 창호지를 만들 때 한지에 들기름을 먹여서 온실의 채광창으로 이용하였다. 그런데 이 기름먹인 한지는 비닐보다 인장 강도가 세어 빗물에 강하고, 빛 투과율 또한 매우 높아져 태양빛을 온실 속으로 잘 투과되게 만들었다.

온실 내부에까지 기름먹인 한지로 도배를 하여 실내에 들어온 햇볕이 골고루 반사되게 하여 실내 바닥과 황토벽에 흡수시켜 장파장의 복사열로 바뀌면서 다시 한지를 통해 나가지는 못하게 되어 온도 상승효과를 가져오도록 과학적으로 만들어졌다. 유리로 만들어진 현대식 온실에 비해 흙벽이 열손실을 막는데 더욱 효과적이며, 눈이 오거나 햇볕이 안드는 밤에는 보온을 위해 짚으로 만든 차양막을 한지창문 위에 덮어 사용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으니 얼마나 과학적인 온실인가를 실감하게 된다.

ㄷ) 기름먹은 한지창호의 놀라운 투습성
유리나 비닐 온실은 온도차로 인해 새벽에 이슬이 맺히게 되는데, 이 차가운 이슬 때문에 햇볕이 차단되면 실내온도가 떨어지게 된다. 하지만 기름먹인 한지는 방수성과 함께 투습성이 있어 작은 수증기입자가 실외로 배출되어 내부에는 이슬이 맺히지 않게 만들어준다. 최첨단 과학기술이 바로 이 한지창호에 숨어져있는 것이다.

ㄹ) 온실 내부의 가습기능이 뛰어났다
아침과 저녁으로 온돌에 불을 지피게 되면 아궁이에 얹어놓은 솥에서 수증기가 나무 홈통을 따라 온실로 흘러들어가게 만들었는데, 실내 온도 뿐 아니라 습도를 놓이도록 만든 것이다. 이 방식은 겨울철이 건조한 한국에 적합한 방식으로 온풍가열방식보다 과학적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온돌이 점차 대중화되면서 온돌을 지필 목재가 점점 부족해졌고, 많은 목재가 필요한 궁중의 온실을 중단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양수리 세미원 석창원 실내에 (사) 우리문화가꾸기회에서 이 조선시대 온실을 복원하여 언제라도 방문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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