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깨는 인류가 이용한 유지작물(油脂作物) 가운데 가장 오래된 재배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중국인은 참깨를 불로장생(不老長生)의 묘약(妙藥)이라고 까지 말하며 한국인의 식탁에 조미용으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위치에 있다.
그러나 참깨 농사를 하는 농민들에게는 파종부터 수확까지 전과정을 모두 수작업으로 하는 번거로운 작물이다. 따라서 고령화된 농촌에서는 일손이 많이 필요한 참깨 농사를 회피하게되면서, 국내 참깨 유통시장은 국산 참깨보다 수입산 참깨가 더 많이 유통되고 있는 현실이다.
경북농업기술원 생물자원연구소의 권중배(51) 박사는 20여년을 참깨 품종 연구를 하고 있는 국내 참깨 육종의 최고 권위자이다. 권 박사가 개발한 신품종 참깨가 농가에 보급되면서 이제 참깨는 기피작물이 아니라 신소득 작물로 주목받고 있다.
노동력의 고령화에 따른 재배면적 감소를 극복하기 위해 다수확 품종 개발
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 도촌리에 위치한 경북농업기술원 생물자원연구소. 이곳은 경북 북부지역의 특화작목인 참깨와 마에 대한 품종개량과 재배기술 개선, 지역적응 작물의 우량종묘 생산 및 보급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취재차 방문한 날은 여름을 재촉하는 비가 촉촉히 내린 다음 날이었다. 생물자원연구소에 있는 작물들은 성장촉진제를 맞은듯 훌쩍 커 있었다.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권중배 박사는 장화를 신고 포장을 둘러보고 있었다.
참깨 육종은 전통육종법인 교배육종을 하는데 한 품종을 만드는데만 11년이 걸린다. 품종이 만들어지면 2년간 자체 생산후에 3년차에야 농가에 보급하게 된다. 권중배 박사는 참깨 농사의 어려움을 현재 재배현황을 대신해서 설명해 준다.
▲ 초다수확 검정깨 품종인 '희룡깨' 농가시험재배 |
“국내 참깨 재배면적은 지난 1987년 94,000ha였던 것이 현재 23,000ha로 크게 감소했습니다. 이와 같은 감소 원인으로 첫째, 농촌 노동력의 고령화, 둘째, 기계화와 신품종 개발 미흡, 셋째, 값싼 수입 참깨의 시장침투를 들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참깨 재배는 고령화와 노동력 감소로 인해 옛날 방식대로 재배할 수는 없었다. 권 박사는 1997년부터 참깨 육종을 연구하면서 노력이 적게드는 생력재배에 적합한 품종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권 박사가 참깨 품종 개발에 역점을 두었던 사안은 노동력이 적게 드는 생력재배에 적합한 품종 개발이었다. 기존 품종이 단위면적(10a)당 20,000주를 심는데 비해 개량종은 5,000~8,000주만 심어도 이전보다 많은 생산량이 나올 수 있는 품종을 개량했다.
1개 꼬투리에 열리던 참깨가 7개 꼬투리에서 열려…. 2006년부터 매년 신품종 선보여
▲ 꼬투리가 7개인 '풍성깨'(2006년) |
이렇게 해서 처음 결실을 맺은 것은 2006년 ‘풍성깨’이다. 풍성한 성과를 얻을 수 있다고 이름지어진 ‘풍성깨’는 기존 참깨 품종의 수확량이 떨어지는 것을 보완해서 하나의 꼬투리에서만 달리던 참깨가 7개 꼬투리에서 모두 열리도록 개발한 품종이다.
다만 1개의 꼬투리가 달리던 품종이 7개가 달리도록 개발하다보니 재배공간이 넓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보급 농가에서는 기존 방식대로 식재함으로써 ‘풍성깨’ 본연의 특성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기존 품종보다 더 나쁜 작황이 나왔다. 그래서 권중배 박사는 신품종 참깨 보급은 기존 농가가 아닌 처음 농사를 접하는 귀농인을 중심으로 보급하고 있다. 2007년에는 기름이 풍부한 ‘유풍깨’를 개발했다. ‘유풍깨’는 습해와 역병, 도복에 강한 특징이 있다. 장마철 참깨에 병이 많이 발생하는 사례를 본다면, ‘유풍깨’는 30~40일 비가와도 습해 피해가 없다. 현재 충북 진천군 이월면에서 집중재배하고 있으며, 식품기업인 새싹종합식품에서 계약재배하고 있다.
2010년에 ‘수지깨’와 ‘아름깨’를 개발했다. ‘수지맞는 농사가 된다’는 뜻으로 작명한 ‘수지깨’는 ‘풍성깨’를 개량한 품종으로 꼬투리가 달리는 절간(마디)를 짧게해 같은 작물의 크기에 더 많이 달리도록 했다. 10a당 200~250kg 수확이 가능한 초다수확 품종이다. 권 박사는 ‘수지깨’ 개발로 농촌진흥청 농업연구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아름깨’는 ‘한아름 수확할 수 있다’는 뜻으로 작명한 논밭 겸용품종인데, 벼 대체작물로 벼보다 2~3배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작목으로 주목받고 있다.
2011년에는 키가 1m내외여서 하우스에서 작업이 용이한 하우스 전용품종인 ‘안백깨’와 ‘예안깨’와 항산화물질을 보유한 ‘황금깨’ 등을 개발했다.
2012년에는 향이 만리를 간다하여 이름붙인 참기름 전용 품종 ‘만리깨’와 초다수확 검정깨 품종인 ‘회룡깨’를 개발했다.
2013년에는 아름깨를 개량한 ‘경북17호’를 선보일 예정인데, 신품종은 가지가 많고 꼬투리가 3개씩 달려있는 내탈립 품종으로 기계화가 용이한 품종이다.
길이 30cm의 큰둥근마와 재배법 개발, 컬러마도 선보여
▲ 유색(자색)마 |
이외에도 생물자원연구소에서는 안동지역 특산물인 마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60여종의 마가 있지만 국내에는 길이 0.8~1m의 장마, 0.4~0.6m의 단마, 그리고 둥근마(애플마)가 재배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장마나 단마의 경우 길이가 길어 좋은 토양에 토심이 깊어야 하고 수확할 때는 포크레인이 투입되어야 하는 등 재배가 어려웠습니다.”이에 대해 생물자원연구소에서는 2005년부터 생력재배할 수 있는 다수확 마를 개발했다. 길이가 30cm 정도로 삽으로 수확할 수 있는 큰 둥근마로 2011년 첫 공개되었다.
또한 재배방법도 개발했는데, 직경 40cm, 높이 40cm의 비닐포대에 흙을 담아 마를 재배하는 방법이다. 수확할 때 중장비 투입이 필요없고, 수확할 때는 비닐을 칼로 잘라서 캐기만 하면된다. 이렇게 하면 한 포대에서 3~5kg의 큰둥근마를 수확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또한 흰색 일색이던 마의 색깔을 자주색, 빨간색, 노란색 등으 다양화한 칼라마 품종개발도 성공해 농가에 신소득작목으로 인기를 끌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외에도 생물자원연구소에서는 지난 2007년부터 기후변화에 대응한 자원작물(얌빈, 마카, 카사바, 퀴노아 등) 중에서 우리 기후에 적응할 수 있는 품종을 선발중에 있다.
20년간 한 업무에만 집중하면서 좋은 결과낼 수 있어
▲ 항산화물질을 보유한 '황금깨'(2011년) |
1991년 예천군 면서기로 공무원 생활을 했다는 권중배 박사. 당시에는 지금처럼 한국을 대표하는 참깨 육종가가 되리라고는 본인도 생각하지 못했다.
아무리 연구직이라고 하더라도 한 가지 업무를 20년간 지속적으로 하는 것도 공무원 사회에서는 드문 일이다. 그러나 권중배 박사는 6~9월에는 매일 새벽 6시경에 출근하여 참깨 인공교배를 하고, 전국 각지에 시범재배한 작황을 수시로 조사해야 하는 과정을 20년간 지속적으로 해왔다. 또한 일본 시마네현 이즈모농업시험장에서 벼육종 연수(1998~99년), 중국 운남성농업과학원에서 감자육종 연수(2005~2006년)을 통해 육종에 대한 노하우와 국제적인 안목을 넓혔다. 남들은 힘들어 하는 일을 내가 남아서 결과를 보고야 말겠다는 고집이 오늘의 결과를 말해준다.
앞으로의 계획은 컬러마 품종개발과 참깨 기계화수확에 적합한 품종개발, 기후변화에 대응한 신소득작물 개발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당찬 포부를 가지고 있었다.
김신근 기자 pli004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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