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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치는 충견비(碑)가 아닌 심리치료가 필요했다.

기사승인 : 2018-12-27 15:02 기자 : 일송재단 국제개발원

흔히 '펫로스'라고 하는 '펫로스 증후군(Pet loss syndrome)'은 우리에게 익숙한 용어다. 

 

 

▲ 사람이든 동물이든, 가족을 잃은 슬픔은 다르지 않다. 슬픔이 삶을 위협할 정도라면, 치료는 필수다. [픽사베이]

 

2012년 부산에서 40대 여성이 반려견을 잃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한 사건을 계기로 '펫로스 증후군'이 언론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국내 반려인구의 꾸준한 증가와 함께 신경정신과·심리상담소·반려인커뮤니티 등을 중심으로 펫로스 증후군 치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고 관련 서적도 약 40권에 달한다. 

 

펫로스 증후군으로 고통받는 사람을 보며 공감을 보내고 우려하지만 '유난 떤다'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어떤 쪽이든 결론은 같다. 결국 반려동물을 잃은 상실감을 치료해야 할 '병'으로 본다는 것이다. 아무리 반려동물이 소중한 존재였어도 남은 사람은 계속 살아가야 하고, 남은 삶 속에서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런 시각은 합리적이다.
 
반면 반려인을 잃은 동물을 바라보는 시각은 어떨까? 한국애견행동심리치료센터 정광일 소장은 "동물의 상실감은 대개 사람보다 심각하다. 그럼에도 '반려인 상실 증후군'같은 공식 명칭은 없다"고 지적했다. 이는 반려동물의 반려인 상실감을 치료해야 할 '병'으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걸 방증한다.

 

▲ 영화 '하치이야기'엔 세상을 떠난 반려인을 매일 10년간 역에서 기다린 개 '하치'가 나온다. [네이버 영화 웹사이트 캡처]
 
세상을 떠난 반려인을 10년간 기다린 개 '하치'를 보며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다. 2016년 1월 31일 방송된 MBC '서프라이즈' 700회 특집에서 시청자들은 가장 감동적인 사건으로 하치의 사연을 택했다. 
 
반려인 우에노가 1925년 5월 심장마비로 사망한 후에도 매일 시부야역에서 그를 기다리던 하치는 1935년 역사에서 숨을 거뒀다. 이런 하치의 사연에 감동한 사람들은 하치의 동상을 세웠다. 
 

하지만 이를 감동적인 이야기라고만 할 수 있을까? 하치는 생후 1년 5개월을 우에노와 함께 했고, 우에노가 죽은 후 10년을 더 살았다. 견생(犬生) 11년 5개월 중 10년이라는 세월을 돌아오지 못할 사람을 기다리며 슬픔 속에 살다간 것이다. 

 

 

▲ 영화 '화장'에서 개 '보리'는, 그를 생전에 가장 아꼈던 반려인의 유언에 따라 '순장' 당한다. [네이버 영화 웹사이트 캡처]

 

하치의 경우 제 발로 죽은 반려인을 매일 마중나간 것이지만, 김훈 원작의 영화 '화장'(2015)에서 개 '보리'는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안락사를 당한다. 생전에 가장 보리를 아꼈던 아내의 유언에 따라 순장된 것이다. 가족들 중 가장 보리가 따랐던 제1반려인이 아내였다지만, 과연 살아있는 존재의 생명을 빼앗을 권리가 누구에게 있을까. 

 

 

▲ 영화 '터널'에서 개 '탱이'는 터널 붕괴사고로 반려인을 잃는다. [네이버 영화 웹사이트 캡처]

 

반면 영화 '터널'(2016)에서 터널 붕괴사고로 반려인을 잃은 '탱이'는 터널 속에서 만난 사람과 함께 위기를 극복하고 살아남는다. 

 

▲ 루즈벨트와 그의 반려견 '팔라'의 동상. 동상이 나란히 세워질 만큼 각별한 사랑을 받았던 팔라는 루즈벨트 사망 후 그의 부인 엘리노어와 함께 살다가 7년 후 죽었다. [위키피디아 웹사이트 캡처]

 

루스벨트 대통령의 반려견 '팔라'의 경우를 보자. 1945년 4월 12일 루스벨트가 사망하자 장례식에 참석한 팔라는 장송곡이 나올 때 낑낑거렸지만, 하관 후에는 잔디밭 위를 구르며 재롱을 부렸다고 전해진다. 

 

팔라는 루스벨트의 부인 엘리노어와 함께 살다가 7년 후인 1952년 4월 5일, 12세 생일에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팔라는 사망 후 루스벨트 곁에 묻혔고, 루스벨트와 나란히 동상으로 세워졌다. 이렇게 받은 사랑이 큰 만큼 팔라가 제1반려인 루스벨트를 잃었을 때의 상실감도 컸을 것이다. 그러나 팔라는 상실감을 극복하고 7년간 여생을 누렸다. 
 
하치에게도 남은 10년을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그의 '반려인 상실 증후군'은 '충심과 사랑'으로 미화되기 전에 치료받았어야 마땅하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었을 때 슬퍼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만 그 슬픔이 삶을 위협할 정도로 강하고 끝이 없다면 치료받아야 할 병이다.
 

▲ 탱이는 반려인을 잃지만, 터널 속에서 만난 사람과 함께 위기를 극복하고 살아남는다. [네이버 영화 웹사이트 캡처

 

반려생명체, 즉 가족을 잃은 슬픔은 사람이나 동물이나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따라서 굳이 '펫로스 증후군', '반려인 상실 증후군'으로 구분 지을 필요 없이, '가족 상실 증후군(Family loss syndrome)', 또는 '팸로스 증후군(Fam loss syndrome)'으로 총칭하는 것을 제안한다.

 

UPI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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