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품질의 묘목으로 농민에게 고소득을 보장합니다
기사승인 : 2011-04-01 14:30 기자 : 일송재단 국제농업개발원
부친께서 1930년대 사과과수원 운영, 유년시절부터 나무와 함께하는 삶
취재를 위해 미림원예종묘를 방문한 3월의 어느 날. 꽃샘추위가 아직 맹위를 떨치는 가운데 잠바를 입고 목장갑을 낀 채로 전정가위를 들고 1,000여평의 묘목 전시장 전체를 꼼꼼하게 둘러보는 인태평 회장의 모습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남들처럼 눈치 빠르지 못해서 여기까지 온 거 같습니다. 어렸을 적 할아버지께서 한 우물만 파라는 말씀을 좌우명으로 가슴에 안고, 먹고 자는 것 빼고는 놀지 않고 원예종묘에만 전념했을 뿐입니다”라며 겸손한 소감을 먼저 밝힌다.
인태평 회장이 과수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부친이 충남 예산에서 1932년부터 사과 과수원을 운영하면서부터였다. 태어나면서 과수원에 있었고, 과수와 함께 성장하게 되면서 운명처럼 나무와 친근하게 되면서 나무의 생리를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된 것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후지사과 왜성대목 도입ㆍ보급과 자연농원 정원수 묘목 제공으로 입지 다져
1970년 미림원예종묘가 창업할 당시 시대상황은 종묘를 팔기에는 사회가 너무 어려웠다.
그러나 당시 미국에서 과수를 전공한 신경구 박사가 국내에 왜성사과 대목을 도입하면서, 후지사과 묘목을 국내 최초로 도입ㆍ보급하는데 미림원예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또한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이 용인에 자연농원(現에버랜드)을 개발하면서 미림원예가 정원수 납품을 하게 되었다. 이병철 회장은 원예에 대한 조예가 깊었고, 나무에 대한 사랑이 각별했는데, 묘목이 흔치 않던 시절, 인 회장은 이병철 회장의 눈높이에 맞는 묘목을 찾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녔고, 자연농원에 좋은 묘목을 독점 공급하면서 회사의 입지를 다졌다. 30여년이 지난 지금 당시 묘목이었던 나무들은 아름드리 나무로 성장한 것에 대해 인 회장은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미림원예의 역사가 한국 원예종묘의 역사
천황대추나무 묘목화 성공, 일본에 금송 역수출로 해외에서도 명성
‘미림아카데미’를 통해 농민들에게 도움되는 정보 제공
인태평 회장은 현재 묘목산업이 인터넷 과장광고에 따른 시장혼탁을 염려하면서, “인터넷상에서 전해지는 근거없는 수종의 과장광고에 농업인 여러분들은 속지 않기를 바란다”는 당부한다. 이와 함께 미림원예야 말로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고 우량수종만을 생산 유통하여 소비자인 농업인에게 신뢰를 얻는 길만이 혼탁해진 묘목시장을 바로잡는 길이라 생각하고 있다.
인 회장은 현재 묘목을 재배지에서 뽑아 판매하는 관행을 탈피해 묘목마다 포트에 넣어서 컨테이너 재배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묘목의 컨테이너 재배는 운반비용이 추가 부담되지만 묘목 생존율이 100%가 되므로 묘목산업 발전에 꼭 필요하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또한 미림원예는 앞으로 아들인 인근식 전무와 친아들 같은 김원구 상무가 맡아 자신이 일군 사업을 더욱 발전시킬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미림원예종묘(주) (www.treeok.com)
경기도 과천시 주암동 90-1
(02-504-2581)
김신근 기자 pli004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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