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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학자 ‘서유구’가 ‘임원경제지’로 꿈꾸었던 세상

임원경제연구소 정명현 소장

기사승인 : 2018-02-13 16:36 기자 : 일송재단 국제농업개발원

임원경제연구소 정명현 소장

서유구의 임원경제지가 요즘에 재조명되고 있다. 40년 가까운 긴 세월동안 혼신의 열정과 노력을 담아낸 개인이 만든 조선 최대 백과사전 ‘임원경제지’는 총 16지 113권으로 구성된 실로 방대한 양이다. 서유구는 ‘조선판 브리태니커’로 불리는 이 책을 통해 당시와 미래 한국인에게 무슨 말을 전하고 싶었던 것일까?

‘임원경제연구소’는 임원경제지 전권의 번역 완간을 위한 뜻 깊은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임원경제연구소의 정명현 소장을 만났다.

임원경제지의 번역, 출간은 시대적 요구
임원경제연구소의 시작은 2003년부터 서유구가 쓴 임원경제지의 번역에 뜻을 같이한 연구원 15명으로 시작으로 2008년도에 공식 교육청 인가를 받아 현재는 약 40명의 연구원들이 분야별 번역에 임하고 있다.
 임원경제((林園經濟)란 시골에서의 살림운영을 의미하는데, 삶에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이 농업을 중심으로 조상의 오랜 생활 속 지혜와 꼭 필요한 주옥같은 정보들이 담겨져 있어 기대가 크다.

‘임원경제지’를 통해 풍석 ‘서유구’가 꿈꾸었던 세상
조선시대의 정약용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서유구에 대하여는 제대로 아는 이가 별로 없다. 임원경제지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먼저 서유구(1764~1845)와 정약용(1762~1836)을 알아야 한다. 다산 정약용이 조선의 제도개혁을 꿈꾸었다면, 풍석 서유구는 사대부의 개혁을 꿈꾸었다. 서유구는 정약용과 동시대를 살면서도 서로 추구하는 바가 많이 달라 정약용은 철학, 사회과학, 정치학에, 서유구는 나라의 근간이 되는 농업에 더 관심을 두었다.

임원경제지 유예지 원본. 지금 봐도 알만한 수학기호들이 임원경제지에 수록되어 있다.

사회적 부조리는 과연 잘못된 제도 때문일까? 지금 이 시간에도 한국민과 국회는 헌법에 대한 손질을 원하고 있고, 제도가 달라져도 현실은 별반 달라지지 않는 것은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서유구는 곡식만 축내고 보탬이 안 되는 자로 책을 저술하는 선비들을 꼬집어 ‘놈팡이 선비’라고 독설을 퍼부었다. 사회가 암울한 이유는 제도의 미흡 때문이 아니며, 진정한 개혁은 일상에서 실천운동으로 일어나는 변화라고 믿었기에 현실에 적용되지않는 ‘죽은 지식’을 외면하고, 직접 선진기술의 실천을 통해 개혁을 꿈꾸었던 것이다. 또한 다양한 정보들을 조직적으로 정리해두었다는 점에서 서유구의 역작인 임원경제지는 그 가치가 크다 하겠다.

당대의 선비가 시골로 내려가 직접 농사를 짓고 살림을 하는 실천적 삶을 통해 책을 저술하였다는 것은 당시의 가치관으로는 엄청난 도전이고 파격 그 자체였다. 자신이 직접 체험하는 가운데 다른 책들과 비교분석하여 공예, 장사, 예술, 문화, 교양, 취미 등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생존에 필요한 거의 모든 내용들이 총망라된 백과사전을 저술하였는데, 국민 스스로 실천을 통해 사회를 개혁해 나가도록 돕고자한 그의 철학과 희망이 깃들어있다.


임원경제지에 매료될 수 밖에 없는 이유
정명현 소장은 해양생물 연구서인 정약전의 ‘자산어보’를 연구하다가, 임원경제지 ‘전어지’ 편을 먼저 접하였지만 번역본이 없어서 스스로 번역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임원경제지의 어떤 점이 정명현 소장의 마음을 끌었던 것일까? 그가 책을 펼치는 순간 예전의 책이지만 새로운 문물을 접하는 신선한 충격과 함께 현 시대의 책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훌륭한 서적으로 반드시 완역을 하여 국민들에게 선보여야 하겠다는 의지를 갖게 되었다.

방대한 자료가 모두 한문으로 표기되어 번역에 어려움이 있으며, 수량, 부피 등 단위와 수학기호 등을 먼저 이해하지 않고서는 번역하기 어려운 면이 많았다. 옷을 만들고 꿰맬 때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던 바늘처럼 일상생활에 필요한 소소한 물품에서부터 거의 모든 정보와 시대적 상황이 사실 그대로 기록되어 있다.

임원경제지 유예지에 실린 거문고에 관한 설명

임원경제지는 중국 등 해외 서적을 단순히 번역한 책이 아니라 한 주제에 대하여 여러 책의 다른 내용을 함께 소개하고, 서유구가 직접 적용해보면서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들이 그대로 담겨있는 실학서적으로 살아있는 생생한 정보로 그 의미가 크다.


국민의 관심과 후원으로 진행되는 ‘임원경제연구소’
워낙 방대한 양을 오랜 시간 번역하고 있어 민간단체로는 재정적으로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국민들의 꾸준한 관심과 후원으로 열심히 번역하면서 2002년 최성어학원 원장의 후원을 시작으로 학자, 민간에서 후원을 받아 해가 지날수록 입소문을 통해 관심이 높아져 2013년도부터 교육부 지원이 시작되었고, 2016년 문화체육관광부에서도 일부 지원을 받고 있어 감사하다. 더 많은 국민들의 관심과 후원이 있다면 계획보다 일찍 번역을 끝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정명현 소장과 연구원들이 오사카나가노시마 부립도서관을 방문하여 원본을 살펴보았다.

2022년까지 번역을 마무리하는 것을 목표로 현재 약 60%정도 번역이 진행되었다. 번역이 끝나면 임원경제지에서 인용했던 853개의 방대한 책에 대한 번역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는 생각이 든다. 조선시대의 지식을 총망라한 백과사전인 임원경제지를 통해 조선 후기의 문화수준에 대한 분석과 서유구의 관심사였던 농업과 접목하여 조선시대에 대한 평가 등 앞으로의 연구 분야는 무궁무진하다. 조선시대 생활백과사전 ‘임원경제지’의 내용으로 ‘문화 컨텐츠화’하는 것도 유익한 작업으로, 임원경제지 안에 재미난 이야기와 소재가 워낙 많아 드라마나 영화를 제작해도 좋을 것이고 애니메이션, 다큐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이 가능하다.  


임원경제지를 통해 ‘미래한국의 희망’을 보다
현실에 적용되지 않는 죽은 지식을 미련 없이 버리고 일상에서 변혁을 꿈꾸었던 진정한 혁명가, 농사를 지어보지도 않고 농사에 관한 서적을 쓰는 선비들을 향해 실천적 노력을 통해 사회의 진정한 개혁을 도모하였던 서유구의 실용학문을 통한 사회개혁은 지금 이 시간에도 요구되고 있다.

단군시대로부터 본다면 1만년 가까운 역사의 대한민국은 불과 얼마 안 되는 세월 속에 급격한 산업사회의 부작용으로 내부적으로 많은 갈등과 문제를 안고 있다. 무분별한 질소 화학비료와 농약의 무분별한 사용, 지나친 육류섭취로 인해 사육되는 가축분뇨와 산채로 매장된 엄청난 양의 가축들로 인해 토양과 수자원은 오염되어버렸다. 1차 산업의 쇠퇴로 농촌에는 노인들만 남았고 농업은 사양산업이 되어버렸다. 터무니없이 부족한 식량의 대부분을 수입하다보니 유전자가 변형되어 안정성이 검증되지 않은 먹거리가 국민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으며 자살과 불임률이 세계1위의 나라이다. 식량안보를 잃은 나라의 미래는 불투명하고 지속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정신적 노동이 곧 바람직한 미래의 노동일까? 몸을 움직이지 않고 두뇌만 움직이며 살아가다보니 몸과 마음이 병들어가고 탐욕은 커져가며 세상은 어지러워진다. 농자 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의 가치관이 변하여 돈만 따라 움직이는 세상은 점점 타락해간다. 오랜 역사 속에서 검증된 조상들의 경험을 통한 소중한 정보들이 현대에서 우리의 생존전략이 될 수 있다. 임원경제지의 소중한 우리의 정보를 잘 관리하고 활용한다면 우리에게 희망이 있지 않을까!

철밥통 공무원들은 여전히 구태의연한 의식으로 나라의 곳간을 축내며, 이 시간에도 공허한 말장난에 정쟁만 벌이고 있는 수많은 국회의원들, 죽은 지식만을 앵무새처럼 떠벌리는 놈팡이 학자들, 이들과 국민들에게 서유구가 전하고자 하는 것은 지속가능한 미래한국을 위한 절박하고도 희망적인 마지막 메시지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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