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승인 : 2019-01-24 15:40 기자 : 일송재단 국제개발원
경술국치 4년전이고, 하얼빈 역전에서 안중근 의사의 저격에 사살되기 3년 전, 조선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1906년 10월 종로의 本町通거리에 있는 유명요정(요정명 미상)에서 통감부 수하들과 술자리에서 “조센징(朝鮮人)들이 즐겨먹는 막걸리에는 알 수 없는 묘한 성분이 들어 있는 것 같다. 이놈의 인종들은 막걸리만 먹으면 없던 힘도 생기고, 신명이 난다. 막걸리 먹고 취하면 순사 총칼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라는 발언을 했다고 전한다. 이 같은 내용은 ‘한국의 酒神’으로 불리는 우곡(又麯) 배상면(裵尙冕) 박사가 편역한 「朝鮮酒造史 : 1907∼1935년」에 언급된 내용이다.
이듬해 이토 히로부미는 일제수탈의 일환으로 주세법을 제정하고 1907년 이전에 전국(지금의 남북한 전체)에 산재한 막걸리 양조장 15만 5,632개를 10년 동안 통합(1910년 10월 1일 초대 조선총독으로 취임한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内正毅)는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했다)시켜 누룩제조장에서만 막걸리를 만들도록 하여, 전국 양조장을 6,733개로 줄여버렸다. 뿐만 아니라 우리민족 전통 고유의 막걸리 발효방법에 일본 사케식 발효방법을 가미시켜 교잡종 같은 효모균이 탄생되었다. 이러한 억압정책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전통 누룩(곡자)을 가업으로 전래 유지하는 3개 가문이 있다. 전라도 광주 송학 곡자와 경상도 북부지역의 상주곡자, 그리고 남부지역의 진주곡자이다.
이토 히로부미와 같은 논리로 조선민족에게 막걸리를 격리시키도록 조치한 사람이 또 있다. 바로 중국 공산당 정부를 건국한 모택동이다.
1966년 가을, 모택동의 문화혁명이 절정을 이룰 무렵, 동북3성의 ‘太上王’으로 불리는 모택동의 친조카 모원신(일명 周信)은 모택동의 명을 받아 홍위병 수백명을 거느리고 연변조선족자치주에 나타나 조선족의 가장 큰 인물이자 大父인 周德海(본명 오기섭 : 러시아 연해주 우수리 출신으로 독립운동가, 1911∼1972)와 조선족 지도층 인사들을 탄압하기 위한 일환으로 조선족들이 즐겨먹는 米農酒(막걸리)를 없앨 것을 지시하고, 동북3성내 조선족들이 운영하던 막걸리 술도가를 전부 없애버렸다. 이후 알코올도수 38도 이상이나 되는 고량주가 조선족마을에 뿌리를 내렸다.
당시 모택동은 조카 원신(元信)에게 “조선족에게는 막걸리가 그들의 전통술이고, 제사술이다. 이것은 그들의 뿌리일 것이다. 이놈의 조선족들은 이 술만 먹으면 신명이 나고 흥겨워 춤을 춘다. 주덕해는 항상 이 술을 먹고 싸움터에 나갔고, 이겨 돌아왔다. 위험한 술이니 철저히 없애라”고 했다고 한다.
이즈음 한국에서는 이 땅의 ‘참군인’인 한신(韓信) 장군이 6군단장에 취임후 제일먼저 취한조치로 군영내 PX에서 사병들에게 알코올도수가 낮은(6도정도) 막걸리를 팔도록 했다. 요즘으로 보면 충격적인 일이다. 한신 장군은 “막걸리는 배고픈 장병에게는 된장국과 같은 영양가 높은 음식이고, 또 이것은 향수를 달래고 전투력을 증강시키는 특효약이다”라고 했다.
필자는 한신 장군산하 OO부대에서 1964년말부터 24개월간 근무했는데, 병역특례법에 따라 생명수당대신 복무단축을 선택했다. 생명을 담보하는 작전에 필자도 막걸리를 배불리 먹고 기약 없는 먼 길을 떠난 적이 있지만 살아서 돌아왔다.
● 막걸리에는 우리가 모르는 무언가 있다
상기 세 사람이 지적한 막걸리에는 우리가 모르는 무엇인가가 있다. 우곡 배상면 박사는 “우리 전통 막걸리의 효모중에는 두뇌 및 중추신경을 자극하는 활성화 물질이 있는 것 같다. 그것은 엔돌핀(행복물질)일 수 있고, 세라토닌(신명을 북돋는 물질)일 수도 있다”면서, 자신의 연구실험에서 “인종과 성별에 관계없이 신명과 흥취를 북돋운다는 사실을 찾았다”고 했다. 또한 막걸리는 ‘먹는 것’이지 ‘마시는 것’이라는 표현은 잘못된 것이라고 하면서, “막걸리 1병(1ℓ)에는 요쿠르트 100병 가량의 유산균이 들어있어 한국인에게는 지상 최고의 음식”이라고 강조했다.
덧붙여 막걸리가 독일의 맥주, 프랑스의 와인, 영국의 위스키보다 더 세계적인 명주가 될 수 있고, 막걸리에는 한민족의 정체성이 깃들어 있다고 했다.
박목월(朴木月, 본명 朴泳鍾 1916∼1978) 선생의 시 「나그네」를 보면,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와 같이 남도의 마을정취를 노래했다. 보리고개를 아는 세대들에게 결코 행복하지 않았던 시절을 막걸리로 배고픔을 달랬던 알싸한 추억을 느끼게 하는 정서가 있다.
● 막걸리를 소주만큼 마시면 쌀 재고 문제 단숨에 해결된다
국세청 자료에 의하면 지난해 소주 소비량은 약 100만㎘에 약간 미달되고, 막걸리 소비량은 약 26만㎘이다. 병으로 따지면 19세이상 성인남녀가 지난 1년 동안 소주는 약 70병(360㎖들이), 막걸리는 약5.2병(1ℓ들이)을 각각 마셨다.
막걸리를 국내산 쌀로만 만든다면 쌀 1kg은 5kg의 막걸리를 만들 수 있다. 최근 정부가 막걸리 원료명과 원산지 표시제도 시행은 국내산 쌀 소비를 위한 정책으로 매우 칭찬받을 일이다.
26만㎘의 막걸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쌀 5.2만톤이 필요하고, 소주 소비량인 100만㎘를 막걸리로 만들기 위해서는 쌀 20만톤이 필요하다.
그러나 단순계산으로 19세이상 성인남녀가 막걸리를 1주일에 1병씩 마시면 년간 52병이 되고, 이는 작년 막걸리 소비의 10배가 되어 쌀은 52만톤이 소요된다. 이렇게 된다면 재고미 걱정은 단숨에 사라진다.
장년층 이상의 고령자들에게 건강차원에서 식사대신 막걸리로 한끼 정도 해결하는 것도 권장할만하다. 필자의 고향동생은 막걸리에 밥을 말아먹는데 아주 건강하다. 필자도 동생처럼 흉내를 내는데, 아직은 익숙치 못하다. 이론상으로 막걸리에 밥을 말아먹는 것은 효소와 유산균의 시너지 효과로 최고의 보약임에 틀림없다.
한편 경찰청 자료에는 막걸리로 인한 음주피해는 전혀 없다고 한다. 막걸리는 취하기전에 배가 불러 더 먹을 수 없는 것이 원인일 수 있다는 단서를 달아 놓았다.
(2010. 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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