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승인 : 2018-10-23 12:25 기자 : 일송재단 국제농업개발원
한국농업의 삼국유사(Ⅰ) - 대우받지 못한 농업 선구자들
(2007. 5.)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삼국사기(三國史記)는 고려 중기 인종(仁宗)때 임금의 명에 따라 김부식(金富軾)이 신라ᆞ고구려ᆞ백제 3국 흥망사를 기록한 역사서로써 흔히 정사(正史)라 칭하고, 삼국유사(三國遺事)는 고려 후기 충렬왕(忠烈王)때 보각국사(普覺國師)인 일연(一然)스님께서 신라ᆞ고구려ᆞ백제 3국의 유사를 모아 지은 역사책으로 사기의 정사와는 대비되는 뜻에서 야사(野史)라 표현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한국농업 발전사에 있어 정부가 기록한 부분을 사기(史記)라 칭하고 저 같은 사람이 기록하는 부분을 유사(遺事)라고 표현하면서 한국농업현장에서 그늘에 가려져 알려지지 않는 사실들을 기록하여 야사(野史)로 남기고자 합니다.
현재 지구촌에서 유엔가입 195개 국가 중 농업생산을 직업으로 삶을 유지하는 농민이 단 한 사람이라도 존재하는 국가는 189개 국가이고, 이들 국가 중 1인당 국민소득이 3,000달러이상 되는 곳은 약 50여 개 국이 됩니다. 그런데 이들 50여 개 국가 중에서도 도ᆞ농 간의 소득격차가 가장 심한 곳은 불행히도 우리나라라는 사실입니다.
2007년 7월말 현재 도시소득이 100%라면 농가소득은 83%입니다. 농가소득이 도시소득보다 25% 높아야 평형을 이룹니다. 이유는 농촌주택은 도시의 아파트와 달리 광열비가 많이 들고 교육비, 나들이 비용뿐만 아니라 세탁비도 2배나 많이 들기 때문입니다. 의료비는 말할 것도 없고요. 이럼에도 불구하고 도시소득보다 17%나 낮다는 것은 솔직히 정치인들을 원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1948년 대한민국 건국이래로 도시소득보다 농촌소득이 높았던 시절이 딱 3년 있었습니다. 새마을운동기간인 1974, 1976, 1978년도였습니다.
좌우간 비록 한국 농민들이 도시인들보다 못살아도 오늘날까지 한국농업을 이끌어온 선각자 내지는 농촌ᆞ농민 지도자들의 역할을 부정하지는 못합니다. 이에 보답하듯이 한국은 정부가 농민에게 주는 훈ᆞ포장과 대통령상, 정부와 연계 되거나 산하단체에서 수여하는 상 등 통계로 보면 세계에서 농업관련 상을 가장 많이 주는 나라입니다.
구체적으로 열거해 보겠습니다. 해마다 11월 11일 「농민의 날」이 되면 유명 농민단체인 한국농업경영인연합회, 전국농민연맹, 농촌지도자연합회, 전국농업기술자협회, 유기농업협회 등과 농축산 관련조직과 농협중앙회 등에서 한 해 동안 활동한 인물들이 대통령으로부터 훈ᆞ포장과 상을 받을 뿐만 아니라 장관과 청장으로부터도 받아 수상 숫자는 무려 수백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몇 년 후 이들 중 상당 숫자는 머리에 붉은 띠를 매고 국회의사당과 과천종합청사 앞에서 데모를 하고 있습니다. 이유야 다양하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은 정부 정책자금 혜택을 가장 많이 받은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정부 아닌 민간단체에서 수여하는 상도 종류가 매우 많습니다.
대산농촌문화재단의 대산농촌문화상, 세계일보의 세계농업인상, 농협의 새농민상, 가나안 농민학교의 일가상, 건국대학 설립자이신 상허대상, 월정 김용복 한사랑농촌문화재단상 등 참으로 다채롭기도 합니다.
그런데 분명 한국 농촌 발전에 크나큰 역할과 공로가 뚜렷한데도 불구하고 평생 야인(野人)으로 상 하나 못 받고 묵묵히 주어진 역할에 임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상을 못 받는 원인은 너무 박식하고 똑똑하며 정부를 비판하고 공무원들과의 마찰이 멍에가 된 셈이지요. 훗날, 수십년 또는 수백년 후라도 이 글이 창고에서 나와 햇빛을 볼 때 ‘한국 농업발전에 이렇게 훌륭한 사람도 있었구나’라고 사가(史家)들이 정사(正史)건 야사(野史)건 간에 다시 조사ᆞ기록해 주기를 기원하면서 숨은 일꾼들을 소개할까 합니다.
송재득(宋在得) 선생
직립성 왜성사과 전지 방법을 창안한 분입니다. 오늘날 전북 장수사과가 한국 최고의 사과가 되기까지 이분의 역할이 절대적이었습니다. 지난 한세월 농촌진흥청 산하 원예시험장 사과연구관들과 학문으로, 경험으로, 사례로, 치열하게 대립하신 분이지요. 한국사과 재배 농민들한테 가장 존경 받는 인물입니다만 평생 정부 또는 산하조직으로부터 상(賞) 하나 못 받았습니다. 3년 전 환갑나이로 작고하셨습니다.
장수 군민들은 이분의 공적을 기리고자 공덕 흉상을 세워주었습니다.
이종원(李鍾源) 회장
한국 최초로 과수원과 골프장 및 사료초지에 스프링쿨러를 도입하였으며,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때 남한을 방문한 북한고위층들에게 한국도 북한처럼 스프링쿨러가 있음을 증명해준 유명사례를 만든 분입니다.
서원양행이라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점적호스 생산회사를 운영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열사의 나라 중동과 중국의 사막지대에 점적관수를 공급하고 있고, 한국농업의 자동화 시설을 가장 먼저 주창하였으나 공무원들과의 잦은 의견충돌로 농(農)자 붙은 상이라고는 단 하나도 받은 적이 없으나 한국원예 자동화 시설사에 큰 업적을 남겼고, 한국과 이스라엘 양국 간의 친선에도 탁월한 지도력을 보이고 있습니다.
정범윤(鄭範潤) 선생
젊은 시절 동래원예시험장에서 우장춘 박사 밑에서 사사했으며, 원예작물 병충해 보호분야에 세계적으로 존경 받는 독보적인 인물이지만, 농정당국과의 인연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병충해 치료에 대한 저서들이 대학교재로 활용되고 있는가 하면, 일선 농업기술센터 공무원들에게도 매우 존경 받고 있습니다. 이분의 딱 한 가지 흠이라면 너무 박식하여 공무원들을 자주 비판하는 것입니다.
농자 붙은 상이라고는 일선 면장한테도 받은 적이 없으나, 농민 자생조직들에게서 강의 요청이 가장 많아 일년 중 약 250일을 일선 현장강의로 보냅니다. 특히 농업계 최고 보물이라고 소문나 있는 원예작물 병충해 관련 사진기록들을 수십만장 보유하고 있는데, 이것은 일본 원예학계에서도 가장 탐내는 자료입니다.
최병집(崔炳集) 사장
한국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배(梨)를 생산해내는 정림농원(正林農園) 주인입니다. 서울시립농대를 나온 독실한 카톨릭 신자로서 정부지원금을 단 1원도 받지 않은, 박정희 대통령도 알아주었던 고집센 1등 농민입니다.
제3~6공화국까지 청와대에 신고배를 독점 공급하였으며, 수출배(신고) 1호 농장이며 주한 미8군 전속 납품농장으로, 주한미군으로부터 많은 찬사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이분께서는 공무원에게 아부도 모르고 욕도 하지 않았으나 불의를 참지 못하여 간혹 문제를 야기하기도 합니다. 한국 최고의 농민임은 틀림없으나 상을 받은 사실은 전무합니다.
김성호(金聖鎬) 회장
한국원예자재센터 사장으로 사업하던 중 국제화 시대에 발맞추어 중국 최대 화훼산지 곤명(昆明)에 진출하여 2만평(66,116㎡)의 시설단지를 건설하고 양란(심비디움)을 재배하여 중국 부유층을 겨냥, 공급하면서 중국인들의 화훼교육장으로 시설을 개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북경에도 한국산 원예자재 제품들을 공급하는 대형매장을 건설하여 국제적으로 존경 받는 ‘한국농업인’으로 부각되어 중국 TV에 수차례 방영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분 역시 박식하고 공무원들에게 고개 숙일 줄 몰라 영농정책자금 단1원도 받지 못했습니다. 30년 전에 이미 지렁이 분립으로 육묘방법을 개발하고 친환경지렁이 농법을 강조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분 역시 이종원 회장처럼 중국 사막의 녹화사업에 큰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해외농업개발 분야에는 한사랑농촌문화재단의 김용복 회장님 다음으로 해외에서 한국농업을 빛낸 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최영모(崔泳模) 회장
서울 농대에서 농화학을 전공하고 한국최초로 미생물혈분비료를 개발하여 한국농민들에게 미생물비료가 어떤 것인지를 확실히 알려준 분입니다. 세계적 발명 특허품인 ‘유풍분수호스’를 개발한 장본인이고 이것의 연계발명으로 비닐하우스 수막처리 보온법을 개발하기도 하였습니다.
발명특허를 비롯한 각종 특허를 수백 개나 보유하여 한국농민 중 최고의 발명왕으로 꼽힙니다. 이분 역시 오랫동안 근교원예 농사를 지으면서 작목반 결성과 규격포장재 사업을 실천하기도 했으나 너무 박식하여 농정당국과 농협으로부터는 이단자 취급을 간혹 받기도 했습니다.
이상과 같이 재야(在野)에서 활동하는 한국 3농(농민, 농촌, 농업) 분야의 선구자 분들을 소개하였습니다.
저는 분명 이분들이 한국 최고의 농업선각자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정부로부터 진작 훈장을 받아야 할 사람들은 바로 이분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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